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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로여는에세이] 물소리─물소리 속으로 걸어가던 길 / 김완하

문근영 2014. 2. 14. 10:48

 

물소리
 

 김완하

 

 

간밤 물길이 내고 지운 소리들
모두 다 산속으로 가 있다
물소리는
물푸레나무 잎마다 둥지를 틀고
산뽕나무 줄기에
거미줄 치고 이슬을 걸었다

 

숲길 걷다 보면
물은 왜 흐르며 소리를 내는지
물은 왜 소리를 따라가는지
물소리 속으로 걸어가면
소리만 가고 길은 남아
나무와 풀의 잎맥이 되어 눕는다

 

내 발자국 위에 다시 길을 내며
어둠속 물소리 따라 들어가면
물은 소리로 집을 짓고 마을을 감돈다

 


 

 

물소리 속으로 걸어가던 길

 

 

   어느 해 여름날 백담계곡에 간 일이 있었다. 안개가 감싸고 있는 숲을 따라서 안으로,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오래된 절의 위용을 뽐내며 거기 백담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행은 백담 계곡의 뒤틀린 물줄기를 따라가면서 속세로부터 점차 멀어져가는 발걸음에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배낭 안에는 며칠을 보낼 만큼 필요한 소지품이 전체이고 가진 것이라고는 없었다.
   장마철이라서 도착한 날부터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숲을 감싸 안은 안개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 가고 있었다. 계곡에는 온통 물소리로 가득 차 있을 뿐, 물소리 속에서는 또 다른 물소리가 열리고 그 물소리 속으로는 또 하나의 물소리가 들어서며 그렇게 계곡은 물소리 세상이었다.
   오후에 잠시 비가 그치고 산책길에 나섰다. 한적한 길을 따라 열리는 물소리를 밟고 나는 어디론가 한없이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 세상과 완전히 절연된 곳에서 한 잎의 물푸레나무나 뽕나무 줄기에 이슬로 걸려 있고 싶었다. 그렇게 가다가 신비롭게도 하나의 마을에 닿았다. 그 마을은 물소리로 집을 짓고 마을을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걸어 나오니 그곳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을 지내고 백담을 떠나올 때 물소리는 쉬지 않고 우리를 따라왔다. 계곡은 소리를 열어 소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다시 그 속으로 열리고 있었다. 그곳을 벗어날수록 물소리 따라 마음속으로 열리던 마을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떠나오기 전날에야 달이 떠서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며칠만의 달빛이 한없이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그래서 우리는 다리 위에 앉아 몇 잔의 술을 마시며 떠나기 전날의 감회를 나누었다. 그때 달빛에 젖은 숲을 바라보니 다시 환영 속으로 신비롭게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제 이곳을 흘러간 물소리는 자취 없이 사라졌는데, 여러분들은 아직도 왜 여기에 남아 있습니까!”
   떠나와서도 시간이 갈수록 그분의 목소리는 귀에 더욱 쟁쟁하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김완하

경기도 안성 출생. 19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네가 밟고 가는 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시선집 『어둠만이 빛을 지킨다』 등.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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