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0
풀 잎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강은교 시집 『풀잎』(민음사, 1974)
「 풀 잎」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암기한, 제 시집 두 권을 갖고 있는 지금도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시. 1971년 강은교 선생의 첫 시집 『허무집』에 실렸던 작품인데, 당시 다섯 살이었던 내가 이 시집을 읽었을 리 만무했을 터. 일곱 살 무렵, 입학을 목전에 두고 겨우 한글을 깨치고 더듬더듬 책꽂이의 책등을 훑어대던 무료한 여름 한낮. 마루 한쪽 벽에 걸린 작은 액자 속의 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로 시작되는 시를,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봉당에 앉아 흙 파고 놀다가 하릴없어 중얼거리며 외워버렸다. 나이 차 많은 형님이 문청이었던 관계로 시집을 구해 읽고 그 중 「풀잎」을 액자에 옮겨 걸어놓았던 것. 물론, 지금도 그 뜻을 다 알진 못한다. 이렇게,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굳이 그 뜻을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사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용인신문] 2011년 10월 04일 (화) 22: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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