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문학의전당, 2011)
정이랑
1997년 『문학사상』 신인발굴로 등단을 하고 2005년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황금알)를 펴냈었다. 첫시집 이후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지난 8월에 발간하게 된 것이다. 이번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문학의전당, 2011) 시집은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느낀 생활 속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남편과 자식을 생각하고, 주변의 동료들을 생각하고, 또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대표적인 시가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이다.
나는 남편과 말다툼 끝에 그곳을 나왔다
여자란 결혼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스정류소 앉아 나뭇잎 한 장 주워 잎맥을 살핀다
손바닥의 손금과 흡사한 길들이 선명하다
지나가는 저 사람 또 스쳐가는 이 사람의 길
바라보고 있으려니 정작 나의 길을 분별하지 못하겠다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 부분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가운데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이 허다했다. 30년 동안 남남으로 살다가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남편과 말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와 봤지만 나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내가 낳은 아이가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여자의 고민이 담겨 있는 시다.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나 또한 내가 낳은 자식에게 사랑을 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았다. 나뭇잎에는 선명한 길이 보이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 앉아 있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하는 곳은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 가족이 곧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면서 내 부모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래된 구두를 위하여」, 「와송」, 「돼지국밥 한 그릇」이라는 시인데 「돼지국밥 한 그릇」을 보면 아버지를 통해 느끼는 나의 존재감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아버지는 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시고
집으로 돌아가셔야 한다며 527번 버스를 타셨다
그저 버스의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언제 다시 대접할 수 있을까
시간의 기둥을 잡고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비는 그치지 않고 발가락 사이로 침범하며 걸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나도 우산 없이 걸어가 봐야겠다
―「돼지국밥 한 그릇」 부분
대부분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에 대해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하는 일에만 열중이었을 뿐 자식을 걱정하고 꾸지람하는 것을 그저 잔소리로만 여겨왔다.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와 갑상선암으로 입원하신 어머니. 병간호를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앉아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것이 돼지국밥이었다. 생활에 쫓기다 보니 아버지와는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국밥을 먹으면서 바라본 아버지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어져 있었고, ‘이제 얼마나 더 이 세상에 살아 계실까’하는 마음에 목구멍이 콱 막히고 가슴에는 돌 하나 얹어놓은 것 같았다. 이렇게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언제 이런 자리를 또 마련할 수 있을지 먼 바다를 바라보듯이 그저 국밥 드시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를 통해서 나의 존재감을 느끼듯이 아버지께서 나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곧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단지 가족 뿐 만이 아니다. 매일 매일 출근을 하여 서문시장에서 함께 원단 장사를 하는 동료들도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계모임」이란 시가 그 예다.
등산모임, 운동모임, 동창모임 등등 살면서 모임은 누구나 몇 군데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한 달에 한번 여자들끼리 계모임을 한다. 그 날은 남편과 자식을 떼어놓고, 자신의 이름표를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앉는다. 저녁을 먹고 맥주와 소주도 마시면서 자신들의 삶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의논도 하게 된다.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곧 삶이다. 그런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한 부분을 또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나의 삶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참 좋은 명시는 과연 어떤 시일까’ 생각을 해본다. 한 번을 읽고 또 읽어도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가 아닐까.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가 바로 명시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두 번째 시집은 부모님, 남편, 아이,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깨달으면서 나의 존재감을 찾는 내용들이다.
남편과 말다툼하여 집을 나와 방황하고, 아버지와 또 한 끼니 식사를 할 수 있고, 서문시장의 동료들과 한 달에 계모임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삶을 나는 사랑한다.
─『시에』 (2011. 겨울)
▶정이랑
경북 의성 출생. 199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젊은 시인 들여다보기 - 일상에서 거룩한 것들 / 조병세 (0) | 2014.01.27 |
|---|---|
| [스크랩] 명왕성 리얼리티 - 이재훈 시인 (0) | 2014.01.27 |
| [스크랩] 내가, 나를 말한다면 - 박승민 시인 (0) | 2014.01.27 |
| [스크랩] 나의 서정의 배후는 물 - 김채운 시인 (0) | 2014.01.27 |
| [스크랩] 분절된 기억을 잇다 - 김윤이 시인 (0) | 2014.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