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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평설 / 박남희

문근영 2014. 1. 20. 08:22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평설 / 박남희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신용목

 

 

나는 천년을 묵었다 그러나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했다

천년의 혀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塔을 말하는 일은 塔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

 

다만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비린 지느러미가 캄캄한 탑신을 돌아 젖은 아가미 치통처럼 끔뻑일 때

 

숨은 별밭을 지나며 바람은 묵은 이빨을 쏟아내린다 잠시 구름을 입었다 벗은 것처럼

허공의 연못인 塔의 골짜기

 

대가 자랐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새가 앉았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천년은 가지 않고 묵은 것이니 옛 명부전 해 비치는 초석 이마가 물속인 듯 어른거릴 때

목탁의 둥근 입질로 저무는 저녁을

 

한 번의 부름으로 어둡고 싶었으나

중의 목청은 남지 않았다 염불은 돌의 어장에 뿌려지는 유일한 사료이므로

 

치통 속에는 물을 잃은 물고기가 파닥인다

 

허공을 쳐 연못을 판 塔의 골짜기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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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목을 흔히 바람의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두 권의 시집 제목에 모두 바람이 중심 이미지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의 제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이다. 시인이 바람을 핵심 이미지로 설정해서 시를 쓰는 것은 바람의 보이지 않음과 유동성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이면에 숨어있는 비의를 드러내는 훌륭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신용목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인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진술 역시 인생이 바람을 걷는 것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 시에서는 신용목의 시의 핵심어인 ‘바람’ 이미지가 ‘물고기’ 이미지와 만나면서 한층 구체성을 얻고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물고기’ 이미지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불교적 사유와 연결된 물고기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불교에서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원천적 자유와 수행의 상징적 동물로 여긴다. 본래적 자유를 찾아서 끊임없이 수행하는 인간의 은유적 대상물인 셈이다. 절에 가면 목어나 목탁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그림에 물고기 무늬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 시의 첫 연은 천년을 수행한 물고기(중생)가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하고 탑의 일부인 ‘돌’이 되었다는 진술로 시작된다. 이것은 수행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여정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 수행의 핵심은 ‘천년의 혀’로 상징되는 ‘말씀’이다. 중의 염불도 말씀으로 도에 이르는 과정이고 바람의 이빨도 입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말씀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가를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라는 표현을 통해서 암시해주고 있다. 시인이 “塔을 말하는 일은 塔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고 한 것도 말씀으로 도에 이르는 일이 탑을 세우는 일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일은 “비린 지느러미가 캄캄한 탑신을 돌아 젖은 아가미 치통처럼 끔뻑”이며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로 살아가는 것에 비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본질적으로 ‘물이 없는 곳의 물고기’라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지닌다. 풍경이나 목어처럼 공중에 매달려있는 물고기는 속세인 물속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는 중간자적 존재라는 점에서 중생과 닮아있다. 4연에서 바람이 “숨은 별밭을 지나며” “묵은 이빨을 쏟아내”는 것 역시 ‘이빨’로 상징되는 ‘말씀’으로 도에 이르는 과정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시인은 허공의 연못인 탑의 골짜기에서 대가 자라고 새가 앉는 일상적 행위도 ‘바람의 이빨자국', 즉 말씀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에서 말씀은 깨달음을 위한 연결매체이고, 물고기에게는 그것을 물고 공중으로 날 수 있게 해주는 미끼와도 같은 것이다. 시인이 “염불은 돌의 어장에 뿌려지는 유일한 사료”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어금니, 즉 말씀을 이야기 하면서도 동시에 ‘치통’을 이야기함으로써 말씀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아픈 과정인가 하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러므로 물을 잃은 물고기가 된 화자는 파닥거리며 몸부림칠 수밖에 없고,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하고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본질적인 사유는 ‘허무’이다. 시인이 자신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로 ‘바람’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허무를 치유해 나가는 길은 아마도 시를 쓰는 일일 것이다. 그는 시를 통해서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기보다는 그 과정을 다만 흔들리며 따라가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박남희 (시인)

 

 

-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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