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95) -  몸속의 음악을 듣는 시

문근영 2013. 12. 20. 13:26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95)-몸속의 음악을 듣는 시

 

 

청진(聽診)의 기억
 
 이은규
 

누가, 두 귀를 잘라 걸어 놓았을까

유리창 너머 금속성의 귀
노을을 흘리며 허공을 듣고 있는 것은 청진기였다
의료에 쓰이기보다 헤드셋에 가까운

당신을 듣기 위해 항상 열어두었던 내 귀
채집된 음을 기억의 서랍 속에 숨겨놓은 날이 길다
귀는 깊어 가장 슬픈 기관일 거라는 문장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청진, 듣는 것으로 보다
모든 병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
말더듬이를 앓는 건 그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므로,
말에 지칠 때마다
당신은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문장 읽기를 하다 당신의 가슴에 귀를 묻으면
금세 꿈꾸는 숨소리, 차라리 음악이었고

어느 의사가 병명을 알 수 없는 환자가 안타까워 체내의 음에 귀 기울인데서 시작되었다는 청진의 기억

이제 당신은 멀리 있고
청진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내 두 귀는 고요한 서랍이다

그때의 구름만 내재율로 흐르는 창

 
# 이 시는 발표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 시집으로 엮어 내기 전까지 여러 차례 퇴고를 거친 듯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간행되는 시집이 하나의 정본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상당수의 작품들은 정본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청진의 기억」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한 시다. 둘의 관계는 비극적 정황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정서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절제와 균형의 미를 견지하고 있다. 이은규 시인의 다른 시들도 고전적 균제미와 흐트러지지 않은 정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설득력 있게 독자를 시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견성의 시적 자세로 인하여 이은규의 시는 태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그녀의 시를 신뢰하게 하는 요소이다.

 화자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청진기”를 발견한다. 우연히 하나의 사물이 화자의 감성의 레이더에 포착된다. 청진기는 한 때 “당신을 듣기 위해 항상 열어두었던 내 귀”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슬픈 기관”일 뿐이다. 4연부터 “당신”과 “나”의 관계가 구체화되어 드러난다. “당신”은 말더듬이였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사실을 화자는 깨닫게 된다. 그 말들을 듣기 위해서는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거나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해야 한다.

 이후의 행동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를 듣고 보는 것이다. 말더듬이인 “당신” 가슴 속 말들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것들로 그것은 곧 상처이고 아픔이며 화자가 끝내 끌어안지 못한 “당신” 이다. 그리고 “당신”의 몸속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있고 그 음악은 한때 화자에게 구원의 빛이었다. “청진의 기억”은 곧 “당신”을 듣고 보는 열렬한 사랑의 행동이었던 것이지만 지금 화자 앞에 청진의 대상은 부재하고 두 귀는 다만 “고요한 서랍”일 뿐이다. 그토록 열렬하게 “청진”하였던 시절은 가고 그 서랍 속에는 당신으로부터 채집한 음악이 차가운 “내재율”로 흐르고 있다. 결국 「청진의 기억」은 실패한 관계의 서사인 셈이다.

 청진의 행동은 부재와 결여에서 비롯되었다. 듣고자 하는 대상과 주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비극의 강도는 고조된다. 지금 화자는 현재의 자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온전하지 못했던 과거를 의미화하면서 관계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는 이 시는 몸속의 음악을 찾아나섰던 한 연금술사의 쓸쓸한 고백이다.  

 이렇게 “말더듬이”와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화자의 탐사는 불우한 존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한 편의 돌올한 시를 지상에 남겼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