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연어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실천문학사, 2011)
임 윤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선언 후 불어 닥친 러시아 개방의 물결은 한반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과 가까운 연해주와 사할린주에 사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고려인이라 불리는 동포들이 고향 방문과 무역 등의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때 울산에서 만났던 고려인이 고등학교 친구와 고종사촌지간인 최 씨였다. 그는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러시아식 교육을 받았고 러시아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 몇몇과 연어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삼십 대 초반의 나이였던 필자도 젊음을 앞세워 의욕이 충만했었던 시기였기에 연어통조림 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마침 필자는 그 무렵 기계설비 설계 제작을 하는 조그만 제조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연어 통조림 공장을 건설하는 부분을 책임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할린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유즈노사할린주에는 고려인이 약 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990년대부터 징용 1세대의 영구 귀국사업이 진행되어 지금은 많은 징용세대들이 한국의 곳곳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사할린의 겨울은 눈에 묻혀서 지내기가 일상이고, 여름 또한 수시로 내리는 비로 인해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 넘어가질 않는다. 시집 1부에 실린 시들이 그때의 경험으로 쓴 시들이다.
유전에 파일을 박겠다던 사람들이 파문을 긋는 아침
오호츠크 바다 지나 동해로 오는 연어 지느러미 따라
통조림 깡통에 담을 야심찬 기대로
북양에서 쿠릴열도 돌아오는 항해를 떠난 적 있다
사할린 남쪽 KAL 007기가 사라진 곳
홈스크 바다에 붉은 불꽃 쏟아 내린 한참 뒤
난생의 꿈을 꾸며 당도한 사할린 땅
강바닥에 그물을 깔고 연어 떼가 올라오면
재빨리 끌어 올리는 타워크레인
파닥파닥 튀는 무지갯빛 물방울들
반짝이는 비늘 허공에 뿌리며 파르르 몸부림친다
연이어 들어선 덤프트럭
통조림 공장에 실한 연어를 부려놓자
배가 갈리고 대가리 지느러미도 잘려나간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
여인들이 비닐봉지에 대가리를 담는 저녁 무렵
덜컹 굳게 닫히는 육중한 철문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모여든 고양이가
어둠 속에서도 어둠의 잔해를 두고 만찬을 연다
지하 술집엔 독하디독한 보드카를 홀짝거리는
슬라브 여인과 카레이스키 여인
연어 이야길 늘어놓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야릇한 미소만 흘린다
유전에 파일을 박겠다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채 오늘도 갈팡질팡하고
레닌동상 세워진 공원의 까마귀 떼
가아- 가아- 가아- 가아-
목쉰 울음으로 고개를 내저을 때
퀭하니 타들어간 연어의 눈을 노려보던, 그들은
홈스크 지하에 묻힌 유전의 녹슨 파일을 보았다
―「사할린에는 연어가 산다」 전문
사할린에서 돌아온 후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동북지역 방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조선족이라 불리는 동포들의 사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엔 한국으로의 입국이 엄격한 서류심사로 인해 쉽지 않을 시기였기에 한국으로 들어간 후에는 불법체류자로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선족 사회에서는 팽배했었고 심심찮게 뉴스에도 나왔던 금품수수로 밀입국을 시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중국방문은 일 년에 한두 번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의 전 코스를 육로를 이용하여 답사한 경험이었다. 압록강부터 출발하여 봉황성, 요양, 심양 등 북경까지 이어진 여정을 돌아보았다. 북경서 승덕(열하)까지는 두 번 답사를 했으며「일야구도하기」의 현장인 밀운 호수는 수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기차바퀴는 눈보라 가르며 절룩댔다
먹먹한 가슴 덜컹대며
압록강 혈류 따라
구불구불 닿은 이도백하
어스름에 몇 남은 봉창의 등불에 이끌려
조선족 식당이란 미닫이를 민다
집나간 한족 며느리대신
어눌한 모국어 발음의 손녀딸이 음식을 나른다
된장찌개가 반갑고
짜디짠 김치가 달다
노파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젖먹이 때 만주로 이주해온 뒤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단다
서울 어디선가 막노동 한다는
아들 소식은 묘연하단다
키보다 한 뼘쯤 짧은 뒷방에 누우니
맨발이 문턱에 걸린다
새우등으로 웅크린 이도백하의 겨울밤
소나무에 소복한 컹컹 개 짖는 소리
우지직 부러지는 가지에 관절이 시리다
눈발에 묻어 온 차가운 얼굴들이
밤새도록 봉창으로 날아들었다
―「이도백하에 내리는 눈」 전문
사할린에 살고 있던 징용 1세대 분들의 영구 귀국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연세 많으신 분들은 대부분 귀국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시절 소수민족 강제이주에서 사할린지역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분들 또한 같은 민족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한 만주지역(동북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도 일제 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혹은 선조의 독립운동을 위해 조국을 떠난 동포들이 대다수이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동포임에는 틀림이 없다.
북방지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의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풀어가야겠다.
─『시에』(2012. 봄)
임 윤
경북 의성 출생. 2007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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