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김경후의 시집 《열두 겹의 자정》
당신은 너무 많이 참는 사람
세상에는 참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참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서로 역할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공평한 일이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늘 안 참고, 참는 사람들은 늘 참는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못 참겠다고 말하면서 안 참는다. 그들에게는 늘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참는 사람들은 그냥 참는다. 그들이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봐주고 염려해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보기에 『열두 겹의 자정』(문학동네)이라는 시집을 낸 당신은 너무 많이 참는 사람 같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똬리 튼 뱀만큼 커다랗다
찌그러져 일렁대는
목 그늘을 보지 못하는 그만이
울지 않았다고 웃음을 띠고 있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똬리를 틀고 겨울잠 자는 뱀처럼 커다랗다
이대로 커진다면
곧 성대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그는 자신에게 ‘안녕?’
인사도 참고 있는 게 틀림없다
미소와 웃음의 종류가 그의 인생의 메뉴
—「코르크」 1~3연
당신이 늘 울음을 참아왔으므로 당신과 비슷한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당신은 보이지도 않는 그 사람의 성대를 들여다보고 있다. 왜 성대인가. 눈물은 눈에서 흐르지만 울음은 목구멍에서 치솟는다. 그래서 울음 참는 일을 ‘울음을 삼킨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삼켜진 울음이 쌓여서 그 성대는 기괴하게 꼬이고 넓어졌다. 똬리를 틀고 겨울잠 자는 뱀처럼. 그 위에 (소용돌이무늬가 특징인)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울 수도 있을 것처럼.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다. 보라. 참는 사람은 늘 참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메뉴판에서 한 끼의 식사를 고르듯 적당한 미소와 웃음을 골라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것들을 코르크 삼아, 울음이 치솟는 성대를 틀어막는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오래 참는 것이
크게 울어버린 것이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건
갈라진 뱀의 혀를 깁는 것보다 위험한 일
무엇을 그는 버려야
그를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꼬챙이에 찔려 죽은 줄도 모르고
겨울잠 자는 뱀의 꿈처럼 커다랗다
그뿐이다
울음을 참지 않았다고 외치는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랄 뿐이다
—「코르크」 4~5연(끝)
당신은 자신과 닮은 그에게 말을 걸고 싶다. 오래 참은 것은 크게 운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슬픔임을 잊어버린 슬픔에게, 넌 슬픔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뱀의 혀는 냄새를 맡기 때문에 콧구멍이 두 개이듯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그 혀를 꿰매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그의 성대는 앞으로도 커다랄 것이고, 커다랄 뿐일 것이다. “꼬챙이에 찔려 죽은 줄도 모르고 겨울잠 자는 뱀의 꿈”처럼.
이런 시를 쓰는 당신을 나는 몇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그러니 당신에 대해 아는 척을 할 자격이 내게는 없지만, 당신은 가끔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성대를 코르크로 막고 있었을까. 다음 시를 보니, 당신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또 다른 당신의 말조차 못 들은 척했다. 왜 그 말을, 잘 듣는[effect] 약이 대신 들어야[listen] 하나. 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만 말하나.
이번 약은 잘 들을 겁니다
의사 말을 듣고
믿고 싶은 그 말을 믿고 나는 묻는다
얼마나 잘 듣지 않았나
이불 속에 드러누운 나의 마음은
컴컴한 창밖 얼어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나의 고함조차
듣지 않았지 열어주지 않았지
내가 있어도 나는 빈 방
없어도 나는 나의 빈 방
누구를 기다리는가
골목 구석에 쑤셔박은 내 밤들
털 빠진 등허리를 말고 자던 내가 버린 고양이들
듣지 않았지 나는
내가 지내온 빈 밤의 소리들
내가 지워버린 빈 밤의 소리들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나는 텅텅 빈 소리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는 병
앞으로도 나는 듣지 않을
빈 방의 나의 소리들
이 약은 잘 듣고 있겠지
—「잘 듣는 약」전문
늘 참지 않는 사람은, 늘 참는 사람이 참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당신의 시는, 그렇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한다. 시는 이래서도 필요한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출처: [2012.08.13 한겨레21 제9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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