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김윤희
약에게
비상처럼 고고한 약들도 어찌
밥이 필요치 않으리
집의 약장 속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두 눈 빛내며 숨죽이고 배고파하고 있는 암흑의 약들
너의 친절한 밥이 되어 주겠다
이미 늙어버려 효능이 어떨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허리디스크
최근의 관절염까지
나는 그리 싱싱한 먹이가 되지 않는 줄은 알지만
약 너에게 나를 바친다
뼈는 뼈대로 피는 피대로
내 모든 불량(不良)을 오늘은
통째로 너에게 먹인다
내가 앓고 있는 가장 나쁜
생각을 너에게 바친다
너의 끝없는 욕망 앞에 백기를 든다
# '식후 30분, 1일 3회', 겉봉투에 쓰인 지시사항을 지키려 물도 삼키기 힘든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약"을 먹기 위해 미음한술 떠넘기던 기억들이 있으시지요? 열심히 "약"을 먹다 보면 문득 반투명한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모양의 약 알갱이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약"이 나를 먹고 있다는 느낌에 섬뜩하지요.
"약"은 나의 고열을 먹고, 통증을 먹고, 염증을 먹고, 나의 몸속을 샅샅이 검색하며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자신의 먹이를 골라 찾아 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바로 "약"의 숙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인간들이 자연에서 각종 식물들을 식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독이 되고 어떤 것은 약이 되는 것을 터득 했을 거예요. 서양에서는 약 4,000년 전 수메르 인들의 점토판에서, 기원전 1550년대에 이집트인들의 파피루스에 약물과 그 처방이 기록되어 있었다는군요. 동양에서는 기원전 250년대에 신농본초경(新農本草經)에 약용식물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온답니다.
'양날의 칼'을 가진 두 얼굴의 "약"은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기에 "너의 끝없는 욕망 앞에 백기를"들어선 안 되겠지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 dsseo@shingu.ac.kr)
- '문화저널 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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