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감각의 절대역에서 쌓아 올리는 격장(隔墻) |
| <이병일 시집>-옆구리의 발견 |
잔뜩 독 오른 화사다, 대가리는 땅속에 처박고 있는지 보
이지 않는다. 세상에 나온 푸른 것들이 똬리를 틀며 골짜기
로 들어가는 중이다. 덩달아 흰 꽃과 분홍 꽃이 화사의 등
허리에 한점 한점 새겨진다.
누군가 꽃의 활자를 읽으며 산길을 오른다. 점점 푸르게
밝아지는 화사의 비늘, 몸통에 감춘 수천의 눈동자다. 나물
캐러 입산한 사람, 화사의 꼬리를 밟았는지 봄 산이 척추
세우며 불끈불끈 일어선다. 화사의 독니에 물려 저승 문턱
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 있겠다.
-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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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한 상태에 있는 신생아의 어머니는 가물거리는 잠 속에서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퇴근하는 문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나 물건 떨어지는 소리도 거의 듣지 못한 채 고단한 잠 길에 빠져 있어도, 요람에서 아기가 뒤척이거나 칭얼거리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아기에게 달려간다. 또한 높은 산의 꼭대기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놓여 졌을 때, 어떤 사람은 약 48km 떨어진 곳의 촛불을 알아 볼 수도 있고, 고요한 방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계 초침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어떤 특정한 상황 하에서 어떤 자극에 대해서는 극히 미세한 자극을 감지 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의 역치를 절대역(absolute threshold)이라 한다(Galanter. 1962).
절대역(absolute threshold)이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자극의 역치로 빛, 소리, 압력, 및 냄새와 같은 자극을 탐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강도를 의미한다. 이 시인은 신생아를 둔 어머니처럼 미세하고도 예민한 절대역치의 감각으로 사물과 만나는 시인이다. "잔뜩 독 오른 화사다, 대가리는 땅속에 처박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나온 푸른 것들이 똬리를 틀며 골짜기/로 들어가는 중이다. 덩달아 흰 꽃과 분홍 꽃이 화사의 등/허리에 한점 한점 새겨진다." "누군가 꽃의 활자를 읽으며 산길을 오른다. 점점 푸르게/밝아지는 화사의 비늘, 몸통에 감춘 수천의 눈동자다. 나물/캐러 입산한 사람, 화사의 꼬리를 밟았는지 봄 산이 척추/세우며 불끈불끈 일어선다. 화사의 독니에 물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 있겠다.(봄 산)"를 만나면 섬뜩해진다. "봄 산의 독니"에 물린 충격에 휘청 어지럼이 인다. 겨우내 엎드려있던 산의 뒤척임에 이렇듯 가까이 다가 간 시인의 감각의 절대역치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에너지의 바다에 살고 있다. 매 순간 순간 우리는 가시광선 뿐 아니라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파, 자외선과 적외선,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높고 낮은 무수한 주파수에 노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에너지를 탐지할 수는 없다. 세상을 머릿속에 표상하기 위해서는 환경으로부터 물리적인 에너지를 탐지하여 그것을 신경 신호로 변환 시켜야 하는 데 이런 과정을 감각(sensation)이라 한다. 감각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경험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는 있어도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이 경험한 감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감각적 경험을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유사한 감각의 역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불 수 있는 것이다.
"너렁청한 논배미에 개구리밥들이 품을 넓혀간다/올챙이들이 개구리밥들의 너른 그늘에 안겨 자란다/재잘재잘 피어나는 개구리울음넝쿨 뻗어가는 밤/꼬리가 짧아지기 시작한 어린 개구리 비친다/막, 꼬리를 벗어던지는 찰나(개구리 울음넝쿨 중 일부)'의 그 감각적 느낌은 시골서 자란 사람이라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각적 경험으로 다가온다.
"햇살 좋은 날씨가 많아질수록 건물들은 쑥쑥 자란다/저만치 펌프카는 철근 속옷만 걸친 건물들에게/말랑말랑한 콘크리트 반죽을 짱짱하게 입히기 시작한다/안전모를 쓴 인부들은 밥알같이 모여앉아/배선과 배관이 핏줄로 지나갈 자리를 생각한다/더러는 비의 각도와 기압골의 항로를 체크해둔다/그라인더로 벽돌 자르는 소리들이/가로와 세로의 기둥과 내벽으로 맹렬하게 세워지고/잘 짜여진 방음벽만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식물성의 발견 중 일부)"의 시에서는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층건물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감각적 체험의 공유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이 두더지처럼 기나긴 지하 세계를 뚫고 나와/지상 위에 정기적으로 거대한 아파트를 심고 있을 때/나는 종신보험을 들고 나온 초식동물의 꿈을 꾼다/건물의 유일한 외부인 골목에서 식물냄새가 맡아진다(식물성의 발견 중 일부)"에 이르면 이 시인의 감각의 절대역치가 얼마나 미세하고 예민한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도심에 올라간 고층건물들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않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땅의 숨구멍을 틀어막으며 올린 건물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건물 안이고 밖이고 온통 콘크리트와벽돌로 덮힌 땅은 정말 죽어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 시인은 듣고 있는 것이다.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이 시멘트로 덮어버린 땅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풀씨들의 숨소리를! 그는 마치 식물들의 신생아 어머니처럼 듣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모 채널에서 '지구의 종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시간대 별로 보여 주었는데, 사람이 사라진 땅위의 남겨진 고층 건물들은 비와 바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균열이 간 땅 속에서 시멘트 바닥을 뚫고 풀들이 자라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일 년 남 짓 시간이 흐르자 허물어진 건물들은 온통 식물들에 휩싸이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르자 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삭아내려 온 지상이 식물들로 푸르게 푸르게 흔들리며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작은 돌, 큰 돌, 옆구리가 깨진 돌, 대가리 날카로운 돌 모/아 담장을 쌓아올린다. 황토와 짚을 잘 섞어서 두 집 사이/에 돌 울타리를, 매화나무와 감나무의 경계선을 후회도 없/이 쌓아올린다. 나는 큼지막한 돌덩이를 양손으로 옮긴다,/감나무 그늘로 옮긴다. 저만치 매화나무 꽃눈이 지켜봐도/돌풍과 작달비에 끄떡없는 돌담을 쌓는다./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 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한낮의 하품마저 놓는다./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이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 전문)"
지상의 유기체(organism)는 감각체계를 통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획득한다. 예컨대, 날아다니는 곤충을 먹고 사는 개구리의 눈에는 작고 어두우며 움직이는 물체에 반응하는 감각기가 존재 한다(Barlow, 1953). 만약 개구리가 움직이지 않는 파리만 잡아먹으려 한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이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미세한 감각의 절대역에서 건져 올린 시들로 "담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줄곧 이 담장이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 즉, 시적 감각의 역치는 서로 다를 수 있음을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 중 일부)"라고 전언 한다. 그만큼 자신만만하단 얘기로 들린다.
이병일 시인은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7년 문학수첩신인상에 <가뭄>외 4편이,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견딜 수 없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비] 값, 8,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 dsseo@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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