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월식 - 서덕민

문근영 2013. 11. 30. 17:38

월식 - 서덕민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슬프다
눈과 코와 입과 표정이 없다 해도
오랫동안 누군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내 상대의 그림자가 얼굴에 묻어나기 시작한다
어떤 얼굴은 지구의 그림자보다 크고 짙은 슬픔으로
그대의 얼굴을 잠식해나갈 것이고
밤하늘에 선명하게 파인 달의 궤도라도 지울 것처럼
그대의 익숙한 길을 어둠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어김없이 자신의 어둠을 달에 던져준다
이 땅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본다는 것
그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그림자 속을 지나며
밤하늘의 모든 별 빛나게 할 만큼
밀도 있는 어둠을 만드는 일 아닌가
그렇게 따듯하고 밝은 그대의 어둠을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다시 드리우는 일 아닌가
지구의 그림자 속을 드나드는
고집스레 파인 달의 궤도가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우리가 지나야 할 길은 어차피
누군가 뿌린 눈물로 이미 눅눅해진 길 아닌가

출처 : 대구 문학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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