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무 - 서덕민

문근영 2013. 11. 30. 17:36

나무 - 서덕민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단해지는 것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의 성기가 하릴없이 단단해지고
철없이 거칠어진다고
여자들은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무는 새순 돋고
잎 자라던 연약한 자리가 죽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줄기로 자란다
결국 단단함의 욕구란
생동(生動)에 대한 끊임없는 각성의 형식 아닌가
죽은 다음에나
딱딱하게 굳어지는 사람이
유일하게 나무를 모사하는 방식을
남자의 식물성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발뒤꿈치 굳은 살보다 단단하게 자라나는
생멸(生滅)에 관한 모사,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돌처럼 온몸 굳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그 단단한 다짐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법 있던가
나무의 죽음 또한
싱그러운 생명을 위한 기초 아닌가
운동장 가에 우뚝 서서
폭우를 맞이하는
버드나무들의 시원한 떨림을 보며
남자의 일생과 운명에 대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출처 : 대구 문학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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