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14) - 고독의 서사 |
협연
윤의섭
별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달은 혼자 노래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
노을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플롯과 나무들의 피아노 연주가 어울린
다고 생각하는 건
혼자서는 뭔가 부족했다는 거
독주로는 비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거
혈점을 짚듯 가로등이 켜진다 저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저녁은 완
성되지 않는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묵언수행과 온종일 불 켜
진 편의점의 고행에는 신의 가호가 스며있다
그런 거다 혼자가 아니고 싶으면 완벽하게 혼자여야 한다 별
은 별로 달은 달로 바람과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제 갈 길을 운행해야
한다 이 지구에선 쉽게 고독할 수 없다 인간은 좀 더 떨어져 있어
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이별은 얼마나 가까운 간극이었단 말
인가
그러니 나와 취향이 같으면 좋겠어 그건 함께 고독해지는 일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산책길 나무는 꼭 고개 들어 올려보
고 절판된 책과 담배와 듣지도 않는 레코드를 수집하고 달력에는
절대 메모하지 않고
그건 서로 쓸쓸해지는 일
저녁의 교향곡을 같이 듣는 일
듣다가 차례가 되면 너를 연주하고 너는
나를 지휘하는 일
# 지배적 관념과 허구에서 벗어나는 일이 시쓰기의 출밤점이다. 젊은 시인들을 위험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젊은 시인들이 위험하지 않으면 그건 이미 존재 의의를 잃은 것. 위험하고 위태로운 존재만이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 이것은 비단 젊은 시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시는 혼돈과 광기,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서 발아한다. 중견이든 원로이든 예외가 될 수 없다. 팽팽한 시적 긴장과 서기를 거느리고 있는 시들은 어디에 있든 눈에 띄게 마련이다. 윤의섭 시인의 「협연」역시 새로운 존재의 이면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이 최초가 되어 최초의 사물을 바라보는 순간, 세계는 새로운 방언으로 말을 걸어오고, 주체와 세계의 접면에서 이는 파동이나 불꽃이 바로 살아있는 시의 눈빛이다. 그것은 존재의 어둠을 툭툭 건드리며 다가오는 실존의 실체이기도 하다.
이 시는 고독의 혈점을 짚는 시다. 1, 2연에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삶의 풍경이 제시되고, 3연에서 슬그머니 시의 표정이 바뀐다. “혼자가 아니고 싶으면 완벽하게 혼자여야 한다”는 반어적 수사를 통해 화자는 고독의 맨 얼굴에 방점을 찍는다. “이 지구에선 쉽게 고독할 수 없다”는 현실의 질서와 정경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완벽한 혼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고독’을 든다.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끝없는 교류와 소통을 통해 존재의 영역을 확장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일상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 부분에서 주목하는 것이 ‘거리’와 “간극”이다. 즉 주체의 자발적 고독이 보다 더 완벽한 존재로 가는 길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녁의 완성이 “몰두”에 근거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화자가 4연에서 보여주는 것은 “함께 고독해지는 일”이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연”임을 말하고 있다. “듣지도 않는 레코드를 수집하고 달력에는 절대 메모하지 않”는 등의 일련의 행위는 자의적으로 고독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의식이다. 함께 쓸쓸해지는 고독의 몸짓은 “저녁의 교향곡을 같이 듣는 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너와 내가 서로 존재의 내밀한 공간으로 스며들어 “협연”을 구현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자발적 고독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획득하는 일이다. 고독은 존재를 투명하게 하고, 어지러운 사념을 가을하늘처럼 맑고 명료하게 한다. 존재의 실체를 가장 선명하게 감각하는 순간이 고독 속에 침잠하여 ‘나’를 바라볼 때임을 이 시는 넌지시 말하고 있다. 「협연」은 번잡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고독 속에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일이야말로 “비인간”을 넘어서는 일임을 정치한 시적 구조와 밀도 높은 정서로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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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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