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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18) - 시공을 초월한 상상의 유영

문근영 2013. 11. 20. 11:58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18) - 시공을 초월한 상상의 유영

 

 

 

 

붉은 사슴동굴
 
김정임
 
   오동나무 안에 당신이 누워있다 부은 무릎을 펴는지 나무 틈 사이 삼베옷 스치는 소리가 새 나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제를 올렸다
 
   어디쯤에 꽃잎이 열린 곳일까 눈이 어두운 사람처럼 오동나무 무늬를 더듬어야 우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추억들이 푸른 핏줄을 터뜨리며 둥글게 솟은 흙 속으로 스며들자 검은 구름이 터질 것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이미 저 빙하기 붉은 사슴동굴에서 슬픔이 깃든 뼈를 수만 번 누이고 있는데 나는 어느 시간의 물거품을 이곳에서 휘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소나무 숲에 흩날렸다 깊은 숨을 쉬며 당신은 달력 속에 굵은 빗금을 그으며 떠났다 
 
 
# “나”와 “당신”의 거리는 무려 1만 5천년이다. 멀고 아득하다. 그러나 여기, 신령한 시인이 있다.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상상의 공간으로 진입한 시인은 머나먼 “당신”을 만난다. 시인이 처음 상면한 것은 중국 운남성 인근에 있는 ‘붉은 사슴 동굴’에서 발견된 빙하기의 인류 화석이다. 그 화석이 시인을 사로잡았고, 1만 5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뜨거운 대면이 이루어졌다. 그곳이 이 시의 발화점이다. 인화성이 강한 물질에 불이 붙은 시는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당신”과 “나”이다. 화자는 오동나무관에 누워있는 “당신”이 “부은 무릎을 펴는지 나무 틈 사이 삼베옷 스치는 소리” 를 듣는다. 대상에 대한 간절함이 촉각화되어 감각의 표층에 오롯이 각인되는 순간이다. 이 절묘한 묘사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화자의 귀는 비로소 명부 저편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하여 섬세한 감성의 언어로 돌올히 드러낸다. 서늘하고 명징한 감각의 경험이다. 

 블랑쇼의 말대로 매혹의 대상과의 거리를 둔 접촉, 생생한 촉감의 교유에 이른 화자의 상상력은 현실의 단면과 표층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서사의 세계로 확장하여 시의 공간을 풍요롭게 한다. 즉  “나”와 “당신”의 관계를 단순한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만 설정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의 층을 만들어나간다. “우리의 흔적”이 시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와 “당신”에서 “우리”로 확대된 시는 탄력을 받아 겹겹으로 출렁이기 시작하고, 그 힘으로 “검은 구름이 터질 것같이 어깨를 들썩”이는 상황이 펼쳐진다. 정서의 파동이며 혼융이다.

 “슬픔이 깃든 뼈”는 차가운 동굴에서 수만 번 뒹굴고 있고, “나”는 오직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 유배되어 헛되이 이곳에 있다.  “당신” 과 “나” 사이의 격절이다. 희미한 인연의 흔적만 손끝으로 더듬어 확인하며 “나”는 “당신”을 추억하는 존재이다. 1만 5천년 전의 시간 저쪽에 “당신”은 있고, “나”는 아득히 여기에 있다. 분명한 시공이 둘 사이에 가로놓여 있지만 “당신”은 다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이미 두 존재는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시간을 초월하여 교통한다.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로 현현했던 “당신”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내 곁을 떠난다. 화자의 은밀하고 유연한 상상의 유영은 이쯤에서 멈추고 생사의 경계를 아우르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곳엔 다시 “당신” 혹은 “나” 의 이름으로 뜨겁게 끌어안아야 할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문화저널2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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