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익 시집 해설’「빠이 빠이 철학자여」시평사
슬픔을 거르는 특별한 거름망
마경덕 (시인)
장순익의 첫 시집「빠이 빠이 철학자여」는 구수한 입담으로 그늘진 여인들의 삶을 집중조명, 감칠맛을 내고 있다. 시인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며 늙어 서럽고 아픈 것들을 밝음 쪽으로 이끌어내고 저물어버린 상처를 어루만진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서정 속에 치열한 삶이 꿈틀거리는 장순익의 시편은 삶을 건너는 체험이 모티브가 되어 시를 생산하고 시적주체인 ‘母性’은 시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함께 출발한다. 이때 ‘모성’은 발생론적 지점이 되고 정감이 넘치는 방언으로 절창의 가락을 구성지게 풀어내는 것이다. ‘비애’를 지닌 체험적인 시편에는 웃음을 짓게 하는 ‘여유’가 들어있다.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넉넉한 품에서 ‘비애’는 ‘웃음’으로 바뀌어 변주된다.
장순익의 시편에서 두드러지는 특질은 일상적인 ‘언어’가 지닌 ‘울림’이다. 사투리라는 지역적 언어는 단순히 재미로 끝나지 않고 그 ‘재미’ 뒤에 숨겨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산업화, 도시화된 시대에 ‘옛 것’을 들고 나온 장순익은 ‘새 것’이 주는 순간의 ‘화려함’보다는 묵은 ‘손때’로 반지르르한 ‘옛 것“의 감동에 흠뻑 빠지게 하는데, 그 힘의 주체 되는 것이 ‘母性’을 밑바탕으로 한 ‘진정성’이다. 희생을 지닌 모성의 힘은 곳곳에서 ‘배설’이라는 행위와 맞물리고 절망 앞에서도 의연한 ‘능청스러움’이 농익은 절창으로 나타난다.
현관에서 넘어져
허리뼈가 부러지신 어머니
몸의 기둥이 주저앉을 때
대들보 서까래에 눌렸는지
변통을 못 하신다
내가 6남매를 문 걸어 잠그고 혼자 낳았는데
똥을 못 누다니
6인실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에게 힘주어 설명하셨다
관장약이 밀려나오고
비닐장갑 낀 손가락 두 개가 맥없이 들어가는
찌그러진 문
어린 아들 마당가에 쪼그려 앉아 울 때
급한 김에 나무꼬챙이를 집었다가 내던지고
당신의 비녀를 빼어 파냈다던 어머니
북어 같은 다리를
머리 희끗해진 아들이 말없이 주무르고 있다
-「똥비녀」전문
다급할 때 괴력(怪力)을 발휘하는 모성, 어린자식이 똥을 누지 못해 쩔쩔매는데 보고만 있을 어미는 없다. 다급한 어미는 비녀라도 뽑아 막힌 곳을 뚫어야한다. 장순익은 머리에 꽂힌 비녀가 주저없이 항문으로 들어가는 리얼리즘(realism)으로 모성의 밑바닥까지 탐색해 들어간다. 문 걸어 잠그고 6남매를 혼자 낳은 어머니, 순풍순풍 좁은 산도를 열던 아랫배의 힘은 어디로 가고 변통조차 못하신다. 막무가내 막힌 곳을 뚫고 살아온 어머니, 그것은 젊어 과수댁이 된 한 여인이 세상을 살아온 방법이기도하고 남은 시간을 그녀가 살아가야할 방법이기도 하다.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은 구태의연하고 속도가 느려 때론 답답해 보이지만 진지한 삶의 태도에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호랭이 아갈빼기」라는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젊었을 적 호랭이 아갈빼기 같던 시어머니
늙어서 무슨 이쁨 받치느라고 똥칠하고 누운 지 삼년
그래두 지 엄니라구 보약 지어다 먹이고
똥은 안 치우는 시누이가 밉다는 금자 언니
자기는 칠십만 넘으면
약이라도 먹고 죽어버리겠다고 말할 때
시퍼러둥둥 했다
어머니, 뭐가 못 미더워서 못 돌아가시고 그러세요
가구 싶은데 가는 길을 몰라서 못 간다
아 죽기만 허믄 그 길은 자연히 알게 돼 있어요
가끔씩 이승의 문턱을 넘어
저승에서 꽃구경만 실컷 하고 되돌아오는 시어머니
그 좋은 곳에서 눌러 살지
뭣 하러 되돌아오는지 모르겠다고
팽팽한 풍선 바람 빠지듯 수다로 풀었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식당으로 몰려 갈 때
노친네 즘심 채려 디려야지 어딜 가
쌩둥 일어서는 금자 언니
뒤뚱뒤뚱 어깨 한 쪽 기울어진 몸집이
혼이 들락날락 하는 아픈 집에
밥 떠 넣고 기저귀 갈아주러 간다
-「호랭이 아갈빼기」전문
비극적인 상황에도 인간미(人間味)를 놓치지 않는 장순익의 시편은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않는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 성향을 지녔다. 죽음과 삶은 맞물려 발 한번 헛디디면 저승인데 지난한 삶이라도 쉽게 놓지 못하는 명줄, 때로는 살아있는 자의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그 ‘미운 정’이라는 족쇄가 왠지 밉지만은 않다. 젊어서 호랭이 아갈빼기처럼 사납던 시어머니는 이제 혼이 들락날락 하는 아픈 집이며, 힘든 뒷수발은 젊어서 구박 당하던 ‘며느리’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일방적으로 ‘힘’을 휘두르던 강자는 ‘도움’을 받는 나약한 약자로 바뀌고 말았다. 장순익은 밀고 당기는 고부의 갈등에 ‘애증’이라는 모성을 발로시켜 ‘힘’을 배분함으로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독일제 쌍둥이 칼
토종닭 만만하게 본 게 탈이었다
닭 등허리에 가볍게 칼날을 들이밀다가
어라?
이번엔 귀 높이까지 칼을 들어 내리쳤다
도마가 떨꺽거리고
닭 뼈가 칼을 물고 놓지 않는다
칼날에 난 이빨 자국을 보신 시어머니
혀를 끌끌 차시며
“닭을 토막 칠 때는 칼날부터 쓰는 게 아니여
칼등으로 뼈를 부러뜨린 다음 잘라야지”
평생 무딘 칼을
숫돌에 갈아 온
숨은 검객이 거기 계셨다
-「검객과 토종닭」전문
무딘 칼인 줄 알았던 시어머니는 한때 칼을 가지고 놀던 날렵한 검객이었다. 칼자루는 이제 며느리에게 돌아갔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보다 한수 위인 칼잡이다. 무딘 칼등에도 숨겨진 힘이 있어 예리한 ‘칼날’ 보다도 더 힘이 세다. ‘칼’과 ‘칼날’은 역할이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이듯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혈연은 아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관계로 하나로 합쳐진다.
덩치는 큰데 엉덩이는 가벼운 갑종언니 일층에 식당 이층에 살림집 지하에 슈퍼를 하면서 남의 대소사도 안 빠지고 늘 웃는 얼굴, 식당일 끝내고 밤 열시 넘어 살림집 올라가면 식구들 있을 때는 못 움직이던 시어머니, 혼자 있을 때는 의자 끌어다 놓고 빨랫줄에 걸린 옷이며 이불이며 죄 끌어내려 오줌을 누거나 물에 담궈 놓는다는데, 똥냄새 출처를 찾다가 어머니 오늘은 어디다 두셨나 영 못 찾겠네 가르쳐달라고 하면 자랑스레 장롱을 열어 보인다는 시어머니, 씻겨 놓고 온종일 혼자 계시게 한 게 미안해서 노래를 불러드린다고 했다 온갖 욕을 퍼붓는 것도 젊어서 너무 얌전하게 억누르고 살던 게 이제 나오는 거라고 생글생글 웃는 갑종 언니
인격에도 등급이 있다면
갑.종!
이름값 제대로 하는 이갑종
-「인간 이갑종」전문
두 여인의 삶이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리얼한 삶의 현장마저 ‘놀이’처럼 느껴지는 건 극한을 넘긴 자의 ‘여유’가 아닌가. 인간에게도 등급을 매긴다면 ‘갑’종임에 틀림이 없다. 장순익은 소멸’해가는 것들의 어둑한 슬픔을 ‘희망’으로 환치시킨다. 갖은 요설(饒舌)이 난무하는 세상에 인간의 본질을 노래하는 잔잔한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아무런 장식도 달지 않은 다소곳한 목소리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진실’ 속에 ‘희생’과 ‘베풂’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장순익의 시편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위트가 넘치는 ‘능청스러움’이다.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입담에 울다가도 금세 웃게 된다.
모임 뒤풀이가 화기애매했던가? 밥 잘 먹다가 뜬금없이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라구? 동갑네기 화가 선생아 허우대 믹신허구 얼굴 맨도롬해가지구 말뽄새가 그 모냥이니 마나님한테 쫓겨나 꺼칠허니 굶구 댕기지 그라는 아자씨는 안직 젊어서 사랑이여 다시 한 번 하믄서 사랑 밖에 난 몰라라 허는 눈 먼 애송이랑 불지펴 볼 야심이라두 있능겨? 선생이 여자 나이를 과일로 비유하는 그런 부류라면, 그려, 시방 내 나이는 과일도 아니믄서 과일인 척 한다는 토마토라 이거여.
집에 오는 동안 내내 속으로만 치받다가 아차! 화가 선생이 은유를 했구나 아줌마는 여자보다 한 단계 위지 사람을 생산하셨으니, 엇따매, 여지껀 씰디웂이 속으로 눈 흘린 것이 미안해지믄서 꼰두섰던 밥알이 인자 내리간다야
-「은유」 전문
얼마나 즐거운 반전인가. 생각을 뒤집으니 한순간에 마음밭이 환해진다. 젊은 여자만 챙기는 동갑내기 중년의 남자를 이리저리 들이받다가 사람을 생산한 아줌마는 여자보다 한 수 위라고 깨닫는 순간, 곤두선 밥알까지 내려가는 이 능청스러움에 그만 한바탕 웃게 되는 것이다. ‘눈물’보다 더 호소력이 강한 ‘웃음’은 재미로 끝나지 않고 파문을 일으키며 울림을 준다. 재치가 반짝이는「홍어 요강」도 ‘눈물’ 속에 ‘웃음’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아 글쎄 어제 장에 홍어랑 요강을 샀지 뭐여
양짝 손에 들고 올랑께 팔도 아프고
새 요강인디 어떠랴 싶어 요강에 담아 이구 왔슈
엊저녁에 그 요강을 마루에 놨는디
아침에 홍어를 찾응께 웂잖여
새복참에 오줌 매령게 그냥 거기다 눠 버렸네벼
아까워서 물로 헹궈 쑹덩쑹덩 무 썰어 넣구
고춧가루 벌겋게 지졌더니 먹을 만 합디다
곡기도 끊고 누워 있을 거라
미음을 쑤어 갔던 울 엄니
흰죽사발처럼 싱거워진 얼굴로
소금 안 쳤어두 간간혔지유?
두 과수댁이 허리를 접고 웃을 때
토담 밑에 과꽃들이 일제히 흔들렸던가?
흔들리다 딱 멈췄던가?
-「홍어 요강」 부분
슬픔은 슬픔을 알아보는 법. 동병상련의 두 과수댁이 홍어 한 마리를 놓고 주고받는 농담 속에 두 여인의 일생이 다 녹아있다. 탈이 난 속을 다스리는 데는 그만인 ‘미음’, 얼마나 숱한 날을 머리 싸매고 드러눕고 싶은 날이 많았던가 ‘흰죽’이라도 쑤어 먹고 일어서야 하는 과수댁의 뼈저린 ‘슬픔’도 시인을 거치면 맑고 투명해진다. 장순익은 ‘슬픔’을 거르는 특별한 거름망을 가졌다. ‘아픔’을 ‘아픔’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뛰어난 화법이다. 마치「은유」라는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여유처럼 한 수’ 위인 고도의 화법인 것이다. 장순익의 시편은 웃으며 상처를 견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어쩌면 ‘아픔’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어 ‘웃음’이라는 것으로 슬픔을 덧칠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보내 주신 백계동 녹차를
오늘에야 개봉 했습니다
막연히 함께 나눌 사람 있을 것 같아
단풍 들고
낙엽 지고
겨울이 깊어졌습니다
밀어둔 신문 한꺼번에 읽다
손 시린 아침
찻물 끓여 쟁반에 놓고
두 개의 잔을 놓으려다 흠칫 했습니다
차 한 잔을 따라
두 손으로 감싸질 때
뜻밖입니다
내가 내 손을 잡아 준 지
참 오랜만입니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부분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않던 시인은 때를 놓친 ‘녹차’ 한 잔을 통해 외로움을 고백한다. “내가 내 손을 잡아준 지가 언제인지 모를” 시린 날을 건너와 문득 소스라친다. 시편 전반에 흐르는 걸쭉한 사투리는 좌판에 나앉은 억센 여인네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속내는 한없이 여리고 보드랍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동적인 장순익도 고요하고 차분한 ‘녹차’ 라는 시한편으로 잠깐 속내를 보여준다. 결이 거칠게 보이는 것들이 막상 껍질을 벗겨보면 눈부신 속살을 가지고 있듯이 장순익의 시들은 겉보기와 달리 순백의 영혼을 가졌다. 그 맑은 영혼의 모태는 “자식을 흙처럼 보듬어 키운 보자기 같은 어머니들” (「대파」)이며 “오수리에서 규암까지 오리를 걸어 고속버스에 이불보따리 실은 지 35년만에 가지와 뿌리 뭉텅 잘려 나간 수령 86년의 어머니“ (「이불」) 즉,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친 희생적인 모성이다. 팔순 어머니를 아직 이불이라 믿는 시인, 뒷집 돼지똥 냄새와 돼지똥 냄새에 섞인 뒷집 밤꽃 냄새를 맡으며 세상을 건너는 장순익은 보도블록 틈에 자리를 잡은 민들레 냉이 꽃다지를 보며 모래내에 함께 살던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한다.
흙먼지 한줌에 세 들어 사는
민들레 냉이 꽃다지
한겨울 아랫목 이불 속에
발 엉키며 지낸 식구들처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피워낼
방 한 칸 들여야 겠다
틈이 없는 것은
깃들일 품이 없는 것
빈틈없이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버린다
-「틈」부분
틈… 흙먼지 한줌에 웃음소리 피워내는 틈은 방 한 칸이다. 장순익은 틈을 만들어 기댈 곳 없는 것들을 껴안는다. 빈틈없이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버림으로 스스로 틈을 늘린다. 여기서 틈은 ‘받아들임’의 긍적적인 틈이며 ‘틈’을 보임으로 더 너른 품을 가질 수 있는 따뜻한 품이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온 늦된 아이가 거실장 싱크대 서랍을 뒤지고 침을 흘리며 다가와 열쇠를 귀에 꽂아도 “아직 열리지 않은 늦된 내 귀를 따고 있다”고 말하는 장순익은 너른 품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겐 슬픔을 정화하는 성능 좋은 거름망이 있다. ‘중심’이 되지 못한 질펀한 삶도 그녀를 거치면 순하고 차분해진다. 사납고 거친 것들, 격앙된 목소리도 다소곳하고 나긋해진다.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장순익은 분명 맑은 ‘영혼의 필터’를 가진 시인이다.
-http://blog.naver.com/gulsame?Redirect=Log&logNo=50076715115&from=postView(내 영혼의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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