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8) 맹독의 시 |
각시투구꽃을 생각함
문성해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우는 늦여름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멀리 쫓아내 버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
그 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
시 한 줄 쓰려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난 각시투구꽃의 모양이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 같다는 것과
맹독성인 이 꽃을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보고서를 떠올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난데없이 우리 집 창으로 뛰쳐 들어온 섬서구메뚜기 한 마리가
어쩌면 시가 될 순 없을까 구차한 생각을 하다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온
윗집의 뽕짝 노래를 저주하다가
또 뛰쳐 올라간 나를 그 집 노부부가 있는 대로 저주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각시투구꽃의 밤을 생각한다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고 있을
# ‘감자’가 ‘감자’를 벗어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세계는 새롭게 창조된다. 기존의 질서는 사라지고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 발언을 시작한다. 오멸 감독의 독립영화 「지슬」에서 감자는 단순한 곡물로 머물지 않고 불의 시간을 통과하여 영혼의 양식이 된다. 감자가 사랑의 실체로 변전하여 굴러오는 순간 이데올로기도 좌우의 충돌도 없는 삶의 지점에서 감자는 생명의 환희로 빛을 발하며 한 덩어리의 알로 아름답게 부화한다.
「각시투구꽃을 생각함」또한 그러하다. 비루한 일상에서 ‘시’로 향하는 길이 지난하고 험하다. 머나먼 길이 고행의 과정이며 긴장과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일상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시의 품으로 가고자하는 열망이 점층적으로 가열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섯 번 반복되는 “시 한 줄 쓰려고” 는 시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그 열쇠를 따라가다 보면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고 마침내 시의 정점에 도달하여 황량한 일상의 현장을 벗어나게 된다. 대립과 충돌을 통해 한 송이 꽃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순교의 과정과 흡사하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시 하나 잡고 버티려는 안간힘과 몸부림은 처연하기까지 하지만 시적 주체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인고의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의 안팎이 정직하게 맞서 있는 풍경이 시에 설득력과 안정적 질서를 부여한다. 시의 저편에는 “설치는 아이들”과 피붙이의 갖가지 일,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 독촉장”들이 있다. 화자는 외부 환경과 맞서 싸우며 시의 고지를 향해 육박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 각시투구꽃의 밤”을 발견한다. 그 꽃은 오랜 인고의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내면에 “한 방울의 맹독”을 지니게 된 사물이다.
감자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듯 각시투구꽃 역시 예사로운 꽃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처럼 단아하면서도 투구를 쓴 듯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독초이다.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내장한 꽃은 곧 시적 주체의 전화이다. ‘각시투구꽃’은 백 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와 같이 동종의 사물이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맹독을 완성하”여 새로운 생의 진경을 보여주는 시의 질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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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 출처: 문화저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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