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의 「소금 창고」평설 / 이광호
소금 창고
송찬호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 창고까지 왔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이미 오래전부터 소금이 들어오지 않아
소금 창고는 텅 비어 있었네
나는 이미 짐작한 바가 있어,
얼굴 흰 소금 신부를 맞으러
서쪽으로 가는 바람같이
무슨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나는 또, 사슴 같은 바다를 보러 온 젊은 날같이
연애 창고인 줄만 알고
손을 잡고 뛰어드는 젊은 날같이
함부로 이 소금 창고를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가까이 보이는 바다로 쉬지 않고 술들의 배가 지나갔네
나는 그토록 다짐했던 금주(禁酒)의 맹세가
또,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 생각나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울었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그리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디엔가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네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낡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여기 소금 창고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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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를 단지 서정 시인이라고 호명하는 것은, 그의 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섞이지 않을 듯한 사물들을 연결시키는 상상적인 화법과 언어의 깊이와 한계에 대해 사유하는 실험적인 정신을 동시에 소유한 시인이다. 그에 의해서 한국 현대시의 서정성은 풍부한 사유와 상상의 공간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의 초기 시의 대표작인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에서 흙이라는 사물과 사각형이라는 도형의 돌연한 결합은 삶의 형식을 완성하는 죽음이라는 '찬란한 한계'의 역설을 발견하는 사유에 도달한다.
시 '소금 창고'는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서 송찬호 특유의 서정성은 일상의 서정과 신선한 동화적 이미지로 구현된다. '소금 창고'는 생의 시간성에 대한 시인의 안타깝고도 처연한 감수성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 시에서 '나'는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 창고까지 왔"다. 이 산문적인 도입부를 마치 소설의 첫 문장처럼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이 문장을 사랑을 둘러싼 회한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읽을 때, 텅 빈 소금 창고는 실재하는 곳이면서 사라진 사랑의 자리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혹은 "함부로 이 소금 창고를 찾아온 건 아니지만"이라고 했다. '아니지만'이라는 말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소한 기대와 희망마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옛 맹세가 생각나 거기서 오래 우는 일밖에는 없다. 소금 창고는 비어 있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디인가/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다. 지금 여기에 없는 여자는 소금처럼 이 세상 어디엔가 편재한다.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낡아갈 수 있는" 소금 창고는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는 나'와 달리 소멸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시간의 몸으로서의 공간이다. 낡은 소금 창고에서 내 사랑이 저 혼자 늙어가는 것을 내버려두고, 다시 나는 세상에 흩뿌려진 소금 같은 한 여자를 찾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이광호 (문학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ㅡ 출처: 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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