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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42) 풍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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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재수 없는
김언희
더럽게 재수 없는 수태고지
초장부터 똥 밟은 나는
아침저녁 살충제에 제초제를 섞어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며 수음을 하네
(내 눈이 걸려보지 않은 임질이라고는 없지만, 내 입이 걸려보지 않은 매독이라고는 없지만)
징글맞게 재수 없는 수태고지
구역질 구역질 애도의 헛구역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한번 박혀볼래?
박아줘?
더럽게 지분거리는 벌건 십자가의 이름으로
나는 내 자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에 담배를 붙이네
# 시인은 극한까지 가보는 자이다. ‘높고 외롭고 쓸쓸하게’ 가는 그 길은 대중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외진 곳이어서 누구나 쉽게 가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시들이 그 길 위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상당수의 시인들이 주저하고 망설이는 곳.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슬금슬금 피하는 곳.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당집이나 상여집 같은 곳. 그래서 아무도 근접하지 않는 곳. 바로 그 자리에서 시는 죽음을 먹고 태어난다. 주체가 소멸하고, 인습과 관례가 사라지는 낯설고 기이한 곳. 소위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근접할 수 없는 곳. 내던지고 저질러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발아한 시 한 편을 본다. 사회적 통념, 가치 체계와는 먼 시다. 김언희 시인의 「더럽게 재수 없는」은 ‘수태고지’ 자체를 재수 없는 일로 규정한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수태고지의 내용은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두려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이다. 그러나 시적 주체는 이러한 종교적 언술에 반기를 든다. 동정녀 마리아는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제초제를 마시고 “줄담배”와 “수음”을 하며 눈과 입은 이미 임질과 매독에 걸린 상태다.
이러한 진술은 부정하고 타락한 세계에 대한 거부를 전제로 한다. 즉 임질과 매독에 걸렸다는 것은 세계는 이미 구원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부패했다는 것이고 어떠한 희망도 없다는 단호한 판단의 결과이다. 화자는 계속 “징글맞게 재수 없는 수태고지”에 몸서리를 친다. 이러한 내용은 종교적 사실을 시적 상황으로 변이시켜 진술한 것이다. 신성모독과 종교에 대한 왜곡과 폄훼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시적 주체는 성경 속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 종교의 문제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통렬한 풍자의 칼을 꺼내든다. “벌건 십자가”가 성기로 묘사된다. 십자가는 그럴듯한 종교적 명분을 내세워 개인에 대한 폭력을 일삼는 하나의 상징물이고, 종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더럽게 지분거리는” 대상일 뿐이다. 자유도 사랑도 구원도 아닌 다만 겁탈과 강탈을 저지르는 범죄의 도구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의 요체는 종교에 대한 정면적인 비판과 풍자이다. 거룩한 십자가를 세속적 욕망으로 발기된 물건으로 읽고 있는 시적 주체의 시선에 “더럽게 재수 없는 세계”는 거대한 지옥의 형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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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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