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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그 순정한 치유의 시간 / 홍성란
시란 한숨 같은 것
젊은 기자가 내게 와서 느닷없이 “도대체 시가 뭡니까?” 그래요. “여보, 기자 양반!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내가 당황하기를 바랐나? 시가 뭐냐는 그따위 질문에는 초등학교 이 학년만 되면 누구나 정답을 말할 줄 안다. 또 평생 시를 써온 노인도 답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 질문이다. 나도 그걸 알려고 아직도 노력하는 중이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그랬어요.
문득 누가 나에게 시가 뭐냐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글쎄……. 시란 살며 내뱉는 한숨 같은 건 아닐까.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한숨이거나, 날숨 같은 것. 사느라고 들이마신 일들 뱉어내지 않고는 살 수 없어 내뱉는 한숨 같은 것. 시란 그런 것 아닐까. 한숨.
아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시도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시가 되려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삿됨(邪)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공자님도 《시경》의 시 삼백 편은 한마디로 말해서 나타낸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子曰 詩三百에 一言以蔽之하니 曰思無邪니라).
상처가 났다 상처에 가시가 돋아 겹겹이 쌓였던 시간
넉넉한 햇살과 부드러운 입술에 상처가 꽃이 될 수 있을까
이 나무의 꽃이었던 시간들과 넉넉한 햇살과 부드러운 입술로 다가오던 시간들이 왜 상처가 되었을까. 상처가 제 몸에 가시를 만들고 그 가시가 제 몸을 찌르는 동안 사랑의 시간들은 무너져 내리고 온몸이 어둠으로 덮였으리. 그늘의 시간들. 그러나 다행이다! 그 그늘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던 그 시들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건 아닐까. 그늘의 시간은 이 나무를 성숙하게 한 시간들이다.
이 그늘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제 몸의 상처에서 난 가시가 제 몸을 찌르는 고통을 체험했다. 누군가 원망하고 미워하는 시간들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시간들이다. 상처를 생각하고 상처가 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상처 준 그를 용서했다는 건 아닐까. 용서는 내 마음 편하기 위해 내가 나에게 베푸는 호의다. 용서하는 마음은 시를 쓰게 하고 상처가 꽃이 되게 하리. 조개의 상처가 진주가 되듯이. 그늘, 그 한숨 속 치유의 시간들이 고맙다.
시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들이마신 일들 참을 수 없어 내뱉는 한숨 같은 것. 이 한숨 속에 용서가 있고 화해가 있다. 지난해 《시조시학》 여름호에 실린 〈정경(情景)〉에서도 이 화해와 용서 그리고 감동의 순수를 본다.
아무런 꾸밈없이 본 대로 느낀 대로, 교도소 안마당에서 펼쳐지는 눈물겨운 운동회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순간만은 수인(囚人)임을 잊고 천진하게 부모님을 업고 달리는 경기. 이 용서와 사랑을 담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에서 누구도 힘껏 달리지 않는다. 행여 늙으신 부모님을 등에 업고 넘어질까, 조심조심 걷는다. 하늘도 감동하셨나 보다. 목메어 흐르는 눈물처럼 주르륵, 봄비가 내린다. 나도 눈시울이 뜨뜻해진다.
세상에 날 밀어 넣고 황급히 올라가신, 오늘은 어머니 기일 제사떡 돌리듯이 담 넘어 동냥젖으로 낯붉히던 홍기삼촌
어떤 참조도 없이 문자만으로 시를 읽는다. 어머니는 날 낳아 놓고 세상 뜨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세라, 열린 문밖으로 날 밀어 넣고 황급히 하늘로 가신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 목숨자리에 내가 올라앉은 그날이다. 제삿날 제사떡 돌리듯이 담 너머 이웃 젖어미에게 홍기삼촌은 낯붉히며 동냥젖을 구하였겠다. 미안하다. 고맙다.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생사의 갈림길에 선 모자를 묘사하고는 놀랍게도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을 달았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히는 동안 한 생명이 태어나고 한 생명은 목숨을 거두었다. 강보에 싸인 나를 안고 다니던 시절이 동냥젖을 구하였을 홍기삼촌에게는 낯붉히던 시간이었음을 알겠으나, 어머니를 본 일이 없으니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없겠다. 하지만 “황급히”라는 말에는 핏덩이 내려놓고는 젖 한번 물리지 않고 올라가신 어머니에 대한 슬픈 원망이 담겨 있다. 죄스런 미안함이 담겨 있다.
같은 지면에 발표한 〈소방수첩 7-어느 봄날〉에는 시인의 이런 마음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는 한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아들에겐 연락을 말라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연 하나가 복어의 맹독보다 아프다는 것이다. 해독제도 없다는 복어의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은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산란기에 최고조로 깊어진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깊어져서”를 4회나 반복하고 있는데 이 깊어만 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긴 한숨을 낳았고, 이 긴 한숨들이 모이고 모여 〈엘리베이터〉와 같은 절박하고도 간명한 가편이 되었으리라.
복수초 필 무렵엔 신바람 절로 나서 출생이 빚인 것을 목숨으로 갚고 살자
출생이 빚이라니! 고지 먹는 봄이라니! 고지는 논 한 마지기당 일정한 삯을 정해 놓고, 모내기부터 마지막 김매기나 수확할 때까지 일을 해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 쓰는 삯, 또는 그 일을 뜻한다. 땅 주인은 ‘고지 준다’ 하고 일꾼은 ‘고지 먹는다’고 한다. 미리 삯을 받아 쓰니 일꾼은 빚쟁이다. 몸으로 때워 빚을 갚아야 한다. 고지 자리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옛날 땅 한 뙈기 없는 촌부들은 보릿고개에 쌀 두 섬을 고지 먹고, 추수 때까지 자리품 파느라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허리 펼 날이 없었다고 한다.
매화를 좋아해서 봄이면 “섬진마을에 가” 매화(매실)를 사다가 “꽃잎”서껀 “부신 햇살”서껀 매화 “항아리를 묻”는다는 이 시인은 “천 겹 어둠 속에서 매화가 익는 동안” 속내 “웅크리고 앉은 이도/ 혀 밑의 바늘 쌈지를 녹여내게 되리라”(〈매화 항아리〉《문과 벽의 시간들》 2001) 했다. 매화를 좋아하는 만큼 달콤하고 향기로운 매화주를 좋아하는 시인은 혀 밑의 바늘쌈지 같은 말도 녹여낼 줄 아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난도 기죽지 않고 퍼렇게 살” 수 있고 “고지 먹는 봄에도 눈부신 금빛 태양”은 떠올라 “희망은 죽을 줄” 모르고 “싹트는” 것이다. 매화가 살을 녹여 맛과 향기가 우러나듯이 시인이 마음을 녹여 시를 쓰는 것이다. 순정한 시를 쓰는 것이다.
자네, 천불천탑을 운주사에 가야만 본당가
천불천탑. 천 좌(座)의 부처를 모시고 천 기(基)의 탑을 쌓아올리는 것은 무언가. 천불천탑은 무량무수의 여래를 표상한다. 깨달음의 완성에 도달한 부처. 이 부처가 무량무수 가득한 세상. 부처의 마음이 지극한 세상. 세상 바라는 바가 있으면 천 좌의 부처를 모시고 천 기의 탑을 쌓아올려 발원한다. 이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부처의 자비가 지극한 세상에서 부처님 가피처럼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치성을 드리는 것이 중생의 순정한 마음이다.
한 푼이라도 내 힘으로 벌어 사람답게 써보려는 중생의 마음도 천불천탑이다. 아무렴 천불천탑이지. 그런다고 사람들 일만 천불천탑인가. 가을 감나무 가지 찢어지게 매달린 홍시도 천지자연의 덕을 받아 한 해를 잘 살아낸 감나무의 천불천탑이고, 가지 치고 벌레 잡아 곁에서 따뜻한 눈길 보내던 농군의 마음도 천불천탑이다. 가을 감나무 흐드러진 홍시를 보며 길가는 나그네들의 “아, 좋다! 아, 곱다!”는 순정한 마음도 천불천탑이다. 가을 감나무가 고맙고 이 땅의 농심이 고맙다.
시의 기준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이란 없다고 했다. 각자의 기질에 따라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뿐이며 또한 그것들은 결국 각자의 생각일 뿐이라 했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시론에 적용할 수 있다. 어떤 이는 한숨같이 흘러나오는 시를 쓰고 어떤 이는 연구하여 시를 쓴다. 어떤 이는 말을 버리는 시를 쓰고 어떤 이는 말을 가꾸는 시를 쓴다. 이런 시도 좋고 저런 시도 좋다. 다만 참고할 것은 연암 박지원의 충고다.
저만 아는 시를 써놓고 이 멋진 작품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경우와 같다. 코 고는 사람은, 잘 때 아주 드라마틱하게 코를 골아 옆 사람이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인데도 정작 자신은 모른다. 남들은 다 알지만 정작 코 고는 당사자는 모르는 것이다. 제 시에서 뭔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을 누가 알아보고 일러주면 불쾌하게 생각하고 원한을 가지는 경우와도 같다.
이럴 땐 ‘양약(良藥)은 고구(苦口)이나 이어병(利於病)이라, 충언(忠言)은 역이(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이라.’ 공자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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