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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43) 도약과 연민 - 정전(停電) / 박소란

문근영 2013. 10. 14. 01:19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43) 도약과 연민

 

 

 

정전(停電)
 
박소란
    
  옆방 102호, 그 아무개를 알게 된 건
  어느 이슥한 밤의 일
 
  해독할 길 없는 어둠과 어둠 사이
  아득한 적요로 우거진 공중(空中) 불현듯
 
  콘크리트 벽 저편으로부터 내솟는
  한 줄기 거센 오줌발, 아
  이는 분명
  산 자, 살아 펄떡이는 자의 소리
  기원을 잃어버린 어느 짐승의 긴한 울음 소리
 
  어쩌면 그는
  오랜 맨눈으로 뒤척이다 깨어 속수무책
  이 밤의 맹기를 견디는 자임을
  길을 헤매던 낮 속에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자임을
 
  그래, 어쩌면 그 또한
  황야의 낯선 동굴을 홀로 찾아들 듯
  이역의 단칸방에 불을 놓고 허성한 밥상을 차렸으리
  그 위 한 그릇 식은 밥이 남몰래 꾸역꾸역 몸살을 앓았으리
  벌거벗은 한 줄기 굉음은 방 안 가득
  뭉클한 미명을 드리우고
  굳게 걸어 잠근 이부자리 한 켠 제풀에 어려 흥건한데
 
  이제 나는
  쇠한 짐승의 마지막 발톱을 세워 똑 똑
  그 벽에 노크를 하니
  거기 있습니까
 
  웅크려 흐느끼던 집들 반짝 고개 들어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 볼 때 총총히 여문 귀를 가져다 댈 때 거기,
  거기 잘 있습니까
 
 
# 밤이다. 정전이다. 그리고 시의 주체는 파블로 네루다처럼 ‘입 속에 모이는’ ‘검은 밤’을 대면하고 있다. 단절과 침묵 속에서 화자는 눈앞의 것만 그려내는 엑스레이 시인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편, 엑스레이 사진이 잡아내지 못하는 미세한 생의 영역까지 포착하는 MRI급 눈 밝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옆집에서 들리는 오줌발 소리가 적요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화자의 상상이 촉발되고, 시의 불꽃이 발화되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다. 오줌 누는 소리가 “어느 짐승의 긴한 울음 소리”로 펑 튀어 날아오른다. 고집스럽게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시들은 이 부분에서 도약과 비약의 몸짓을 멈추고 대부분 사물 안에 갇혀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시들은 읽기가 답답하고, 두 번 세 번 읽으면 금방 질려버리게 된다. 폴 발레리의 말대로 시는 춤이어야 하지 단순한 몸놀림이 아니다.

 화자의 상상은 확산과 비약을 거듭한다. 옆집의 남자는 “밤의 맹기를 견디는 자”이고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자”이다. 또한 “이역의 단칸방에 불을 놓고 허성한 밥상을” 차리고 있는 존재이다. 한결같이 상상하는 대상은 도시의 신산한 삶을 살고 있는 존재로 고통과 맞서 싸우는 자이며 세속의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자이다. 화자의 촉수는 현실의 이면과 심층까지 깊이 내려가 생의 어두운 이력을 짚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곧 생명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다. 끌어안음이고 포월의 대자적 몸짓이다. 개인의 삶에서 타자의 삶으로 시선이 확대되면서 시가 거느리는 영역은 크게 확장된다.

 화자의 상상은 단순히 상상의 국면에 머물지 않고 또 한 차례 도약한다. 옆집 벽에 노크를 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관념의 울안에서 실천적 몸짓으로 변전하는 것. 이 시에 하나의 근육과 뼈가 만들어지는 부분이다. 그것도 아주 찰지고 올곧은 근골이다. 육체를 얻은 시는 “총총히 여문 귀”를 “웅크려 흐느끼던 집”들을 향해 연다. 그리고 시의 주체는 조용히 말한다.

 “거기 잘 있습니까?”

 이 물음이 멈추지 않고 더욱 깊어지기를, 동세대의 시인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새로운 시의 독립국가를 세우기를 박소란 시인에게 기대해보는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 출처: 문화저널2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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