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51) 사랑의 기호
베란다
서안나
나는 문, 그는 베란다
나는 그의 밖에 있고,
그는 나의 밖에 있다
나를 열면 그는 반쯤 내가 된다
나를 닫으면 그는 마술처럼 사라져버린다
정작 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내 두 눈이 그를 밀어낸 것뿐이다
나를 떼어 내면
그는 바람 잘 통하는 훌륭한 거실이 된다
사랑이라는 바람만 남는다
내가 사라진 것도
세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랑의 밖이며 안이다
문을 열고 닫는 일
어쩌지 못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향해 뻗어가는
퇴화식물 뿌리 같은 캄캄한 눈동자
사랑아,
문에 접질려 피멍 든 손가락으로 어디서 울고 있는가?
거실문을 열고 닫을 때
열림과 닫힘의 관계를 생각한다
# 결정론적인 고전물리학의 세계는 끝났다. 불확정성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양자물리학은 법칙과 질서 대신 직관과 영감의 영안으로 미시적 세계를 탐색한다. 시와 사랑은 양자물리학의 영역이다. 아주 미세한 파동이며 보이지 않는 비물질의 세계이다. 서안나 시인이 설정한 사랑의 기호는 중의적이다. “문”과 “베란다”가 대립, 충돌한다. 이중구조다. “나”의 개폐 여부에 따라 대상은 부재와 실존을 넘나든다. 사랑의 실체를 탐색하고 있는 화자의 시선은 정밀하고 섬세하다. 부재와 실존을 오가며 사랑은 멍이 들기도 하고 가슴 어딘가가 깨지기도 한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번민과 갈등의 나날을 견딘다. 혹독한 열병의 시간이 지나고 “나”를 지우는 내면화의 시간이 도래한다. 화자는 스스로를 현상의 문면에서 삭제한다. “나”를 지워버리는 순간 대상은 닫혀있던 공간에서 활원한 서정의 지평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와 “세상”은 그대로 있지만 “바람 잘 통하는 훌륭한 거실”이 된 대상을 보며 화자는 비로소 사랑의 실체를 확연히 깨닫는다. 즉 사랑의 안팎에 대한 각성이다. “사랑이라는 바람”은 경계가 무화된 자리에서 생성되는 비물질이다. 결국 주체의 선택에 따라 사랑의 양상은 변화한다. 개폐의 소극적 차원에서 주체를 지우는 적극적인 행위로 확장되고 그것이 작품의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후에도 사랑의 감정은 지속된다. 다만 대상은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다. “캄캄한 눈동자”는 절망이면서 동시에 열망이다. 언제든지 질량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서의 매질이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슬며시 주체를 객체화하여 “피멍 든 손가락”을 환기시키면서 고통의 여정을 응시한다. 이어서 열풍처럼 지나간 사랑의 실체가 명료해진다. 현실의 전면에 드러난 사랑은 “열림과 닫힘”의 관계로 종결되지만 배면에는 비극적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외형적으로 사랑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형상으로 보이나 텍스트의 이면에는 사랑의 아픈 기억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안나 시인은 거실문과 베란다의 관계를 사랑의 기호로 읽으면서 비극적 사랑을 아름답게 완성하였다.
양자물리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를 탐험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잠재적 가능성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파동, 떨어져 있어도 여러 곳에서 존재하는 양자의 세계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화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랑의 대상을 오랫동안 궁구하고 번민하였다. 이러한 곤고한 마음의 행려가 한 편의 시로 개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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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 출처: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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