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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53) 죽음과의 소통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문근영 2013. 9. 26. 13:59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53) 죽음과의 소통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 생의 바깥에서 누군가가 오고 있다. 생사의 경계가 지워지면서 산 자와 죽은 자는 가까이서 대면하고 감각한다. 호흡과 호흡이 섞이고 유무의 실체는 하나의 덩어리로 현존한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승”에는 이승의 절벽에 홀로 서 있는 유한자의 고독한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상 끝에서 극단의 고뇌와 처절한 절망에 휩싸여 있는 수도승이 본 것은 바로 죽은 자의 웅얼거림이 아니었을까. 생사를 넘나들며 죽음의 숨결을 감각하고 사자의 큰 울음에 귀 기울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황량한 배경에 비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는 수도승의 모습이 이 시의 화자와 겹쳐진다. 수도승은 죽음을 살고 죽음을 넘어선다. 그러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해변의 수도승”에 비해 이 시의 분위기는 새틋하고 아름답다. 시의 화자에게도 죽음은 낯설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이에게 몸을 열어 자신을 허락한다. “그”와 “나”는 매우 가까운 사이이고, 서로 연민하는 관계이다.
 
 잠결에 찾아온 고인은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는 존재이면서 아름다운 옛 추억의 행로를 되짚게 한다. 눈뜨지 않고 화자는 계속 꿈의 공간에서 거닌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소통의 순간이다. 그런 까닭에 작품 전체에 죽음의 이미지가 드리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이별과 만남은 유구한 시적 소재로서 대부분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로 채색되는데 이 작품은 통상적 정서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점이 이 시의 특징이고 빛나는 부분이다.

 또한 부력이 강한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시어들이 죽음의 묵중한 이미지를 가볍게 하고 화자의 걸음새를 활달하게 한다. “나비 떼 가득찬 옛날”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무덤가에서 비롯된 시의 행보가 아름답고 화려했던 사랑의 시간에 도달하면서 생사의 경계는 가뭇없이 사라진다.

 추억을 음미하며 거닐던 “그”와 “나”는 마지막에 이르러 산 자와 죽은 자로서 상면한다. 죽음의 대해를 건너 그들은 불후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새 순” “갯버들” “뾰루지” 등의 시어는 미완의 사랑을 완성으로 견인하는 시의 중심축이다. 발돋음하며 다가가는 사랑이 등불처럼 환하게 빛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출처 :문화저널2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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