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54) 신생의 의지 |
다락방
이수익
혼자만의 공기를 쉼 없이 들이킬 수
있는, 마디마디 뼛속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는, 타인들을 멀리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런 곳
그런 자리
그런 분위기
속으로
나를 눕히고 싶어.
아무도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텅 빈 고요만이 물결치는 숨겨진 조그만 방.
그 다락방의 은밀한 초대에
가득히 누워
온전하게 나는
새로워지고 싶어.
떠오르는 비행기처럼 나는 훨훨 날아갈 거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행복한 사탕을 오래오래
빨면서, 머나먼 우주의 끝을 따라 날 거야.
다락방, 언제라도 나를
눕히고 싶은
환상의 그곳.
#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늙고 누추한 다락방의 행방이 궁금했는데 마침 큰 보자기에 다락방을 싸들고 나타난 분이 계시다. 눈에 번쩍 띄어 덥석 다락방을 안아 든다. 약간 곰팡내도 나고, 오래된 책 냄새가 나기도 한다.
“마디마디 뼛속을 깨끗하게 비울 수 / 있는” 곳, 어두운 만큼 맑고 환하여 다락방은 얼핏 투명 물고기 같다. “텅 빈 고요만이 물결치는 숨겨진 조그만 방”에서 화자는 신생의 꿈을 도모하고 있다. 현실의 곤고한 삶을 맑게 세척하여 흰 빨래처럼 펄럭일 수 있는 공간에 화자는 눕고 싶어 한다. 모천회귀를 꿈꾸는 연어의 몸짓이다. 그러나 다락방은 어디에도 없다. 부재는 곧 결핍이다. 결락의 공간에서 화자는 치유와 재생을 기도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을 염원하지만 일상에서 개인의 은밀한 공간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미셸 투르니에는 다락방을 추억과 시가 떠다니는 곳이라고 하였다. 화자에게도 다락방은 그와 유사한 공간으로 기능하며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적나라한 내면을 응시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다락방은 존재의 자궁이다. 모든 생명의 태실이며 신화의 기운이 서려 있는 원초적 장소이다. 그 자리에서 화자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지금 이곳에 없다. 하나의 환상이다. 그리하여 더욱 간절해지는 곳이고 가닿고 싶은 곳이다.
다락방은 은밀한 존재의 성소로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현실의 온갖 고통과 번뇌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자리다. 그곳에 지친 육신을 누이고 맘껏 자유로워진 몸으로 세계를 유영하며 회생과 부활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시적 주체의 꿈이다. 몇몇 발 빠른 독자들은 벌써 다락방을 통째로 집에 들인 사람도 있고 , “은밀한 초대”에 응하여 살과 뼈를 맑게 헹구어 투명한 이슬로 반짝이는 육신도 있다. 아무 쓸모없는 시의 ‘쓸모 있음’이 놀랍게 발현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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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 출처 : 문화저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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