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이시영
밤새도록 파도는 밤섬머리를 들이받아
가장자리에 아름다운 세모래밭을 만듭니다
그러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자욱한 철새들이
거기서 매서운 첫 획들을 찍는데
그중엔 아주 작은 아기 것도 섞여 있어
파도가 다시 와선 뺨 부비곤 했답니다
-출처 : 시집『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
-사진 : 다음 이미지
--------------------------------------------------------------------------------------
수식어의 미학, 구체성의 시학
-이시영의 시 「발자국」을 읽고
이시영 시인의 이번 시집『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에는 이전의 시집들과 날줄 씨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짧은 압축 서정시의 흐름이 있는가 하면, 시대와 인물에 대한 회상 시편도 있고, 책이나 신문기사를 재구성한 시편도 있어 그가 추구해온 다양한 양식적 실험이 이번 시집에 종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떠오른 것이 있다면, ‘이순의 아침’을 맞는다는 시인의 자의식이 표면에 드러난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성찰과 묵상의 시간이 더욱 확대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 시편들이 상당한 의미를 지니며, 이전의 작품들과 의미의 경계를 이루는 하나의 결절점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이시영의 시는 누가 읽어도 쉽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시가 지니는 시적 울림은 예사롭지 않다. 이 시는 자연을 통한 파도와 철새의 조우를 클로즈업 시킨 것인데 파도와 철새는 자신들이 할 일을 다하고 나중에 그것에 상응하는 자취를 남긴다. 이 행위는 시인이 벌여온 도저한 창작의 공력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철새도 자신에 어울리는 작은 획을 남겨놓았다. 이 어린 새의 자취에 대해서는 파도가 매정하게 지워버리지 않고 뺨을 부비며 정겨움을 표시했다고 했다. 이 시에서 수식어 사용도 매우 정밀하고 또 적실하다. ‘아름다운’ ‘자욱한’ ‘매서운’ 아주 작은‘ 등의 수식어가 명사 시오와 적실하게 호응하면서 시 전체의 골격을 축조해간다. 이러한 수식어의 미학은 범종소리를 다양한 감각으로 표현한 「범종소리」,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를 다채롭게 명상한 「박용래를 훔치다」같은 시에서 정상의 경지를 확보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순수함을 일깨우는 이런 시편은 자주 읽어도 식상하지 않는 가치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문학평론가 이숭원 님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차창룡] 벼랑 위의 사랑 (0) | 2013.08.08 |
|---|---|
| [스크랩] [이윤학] 나를 울렸다-풍경의 불가능성을 기입하는 풍경 (0) | 2013.08.08 |
| [스크랩] [이동순] 서역 --- 서역, 의식의 해방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0) | 2013.08.08 |
| [스크랩] 그해, 담쟁이/ 김숙경 (0) | 2013.08.08 |
| [스크랩] [김경호] 몸 --- 아픈 몸, 현실의 노래 (0) | 2013.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