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성선
바닷가에서 작은 조가비로
바닷물을 뜨는 아이처럼
나는 작은 심장에 매일
하늘을 퍼 뜬다
바다 아이가 조가비에
바다의 깊은 물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나의 허파도 하늘을 다 담지 못한다
그러나 조개껍질에 담긴 한 방울 물이
실은 바다 전체이듯
가슴속에 담긴 하늘 또한
우주 전체이다
시심의 출발은 동심(童心)에 있다. 동심이라……! 그런데 ‘아이와 같은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짧고 간단한 질문에 깊이 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짧고 간단하게 답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 우리 마음의 시원 혹은 원형을 고찰케 하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아침이 하루의 시작이듯이, ‘아이와 같은 마음’은 ‘우리 마음의 아침’과 같다. 아침 공기가 더 맑고 신선하듯이, 동심은 마음의 아침이요 시작이기에 때 묻지 않은 신선함과 순수함, 천연의 생기와 밝음이 있다.
동심은 저 너머를 꿈꾸지만,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안다. 동심은 아침 햇살처럼 동그란 마음으로 웃을 줄 안다. 동심은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또 그것으로 모든 것과 교감할 줄 안다.
동심은 마음에 번뇌의 물결이 찾지 않았기에 삶을 보다 아름답게 볼 줄 알고, 그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의 눈이 맑은 까닭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시심의 텃밭이요, 시안(詩眼)을 여는 빛일 것이다.
아이는 왜 저 끝없는 바닷물을 작은 조가비에 담은 것일까? 내 몸에서 뽑은 피 한 방울이 내 몸 속을 흐르는 모든 피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이가 뜬 조가비 속의 한방울 바닷물 속엔 끝없는 바닷물의 모든 영혼의 속성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또 보이지도 않는 내 유전자 하나 속에 내 육신의 정보가 다 담겨있듯, 내 가슴 안에 들어온 하늘 한 웅큼은 하늘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기에 저 무한한 우주와 하나인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하늘과 하나가 되고 저 무한의 우주와도 하나가 된다. 빈 마음으로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경지, 이것은 경계를 허무는 마음의 차원이며 영혼의 이상이다.
윌리엄 브레이크도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라 하지 않았던가. 영원은 한 순간 속에 있으며, 무한은 바닷물 한 방울, 폐 속으로 들어온 작은 숨결 하나에 함께 있는 것이다.
‘작은 조가비에 바닷물을 담는 아이’와 ‘매일 심장에 하늘을 떠 담는 나’라는 두 대상의 절묘한 비유적 등가를 통해서, 또 동시 같은 이 단순한 시적 구도 속에 담은 심오한 영적 철학을 통해서 이 시는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절창의 꽃으로 떠
오른다. 그래서 이 꽃의 향기는 더욱 짙고 값지다.
우리에게 변함없는 동심이 있다면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우리의 폐와 심장 속으로 들어오듯이 우리 영혼의 숨결 또한 더 맑고 상쾌해 질 것이다. 조가비에 바닷물을 떠 담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심장 속에 매일 하늘을 떠 담을 수 있다면, 조가비에 담긴 자기만의 작은 바다를 가진 아이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저마다 끝없는 하늘의 혼이 담길 것이다.
우리의 생에 매일 아침이 돌아오는 것처럼, 그 아침 덕분에 하루라는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동심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할 영혼의 아침이며, 그 아침이 피어내는 맑은 공기이며, 그 공기가 지니고 있는 끝없는 우주의 작은 조가비일 것이다. 우리의 끝없는 ‘생명’의 숨결은 언제나 그 조가비 속에 담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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