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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회 없는 세상, <시저는 죽어야 한다> 만들기 [유지나]

문근영 2013. 7. 8. 07:43

 

제 658 호
참회 없는 세상, <시저는 죽어야 한다> 만들기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을(乙)의 억울함과 갑(甲)의 횡포가 꼬리를 물고 보고되는 중이다. 을의 신문고가 생기고, 부당한 갑을 처벌하는 공정한 시스템의 부족을 시민정신으로 깨우쳐 나가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일상적인 음료에도 밀어내기를 당한 을들의 서러움이 배어 있다. 그런 사태를 알고 나니 더워지는 와중에 음료수를 집어들 때도 특정 기업 제품인지 확인해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문제의 기업 매출실적이 줄었다는 보도를 보며, 다른 횡포도 시민정신에 힘입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풍토가 조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이어지는 또 다른 갑들의 횡포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온갖 분야에서 벌어지는 갑들의 횡포와 몰양식 더미 속에서 공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니 우울과 비애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우울증 지표에서 세계 상위권을 달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관련 환자가 지난 4년간(2007-2011) 47만 6천 명에서 53만 5천 명으로 12.4% 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우울, 사회의 우울이 깊어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강자?

  “포악한 권세가에게도 양심이 있나요?” “왜 우리 사회는 잘못한 강자에게 합당한 벌을 주지 않나요?” 이런 질문을 학생들로부터 받을 때도 있다. 잘못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불공정 시스템에 질려 공정한 해결을 갈망하던 차에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보니, 예술을 통한 각성의 힘이 용기를 준다.

  역전 노장 따비아니 형제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래비비아 교도소의 공연과정을 보여준다. 파비오 카발리는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연극만들기로 정평이 난 교화작업 예술가이다. 셰익스피어 원작 <율리어스 시저>를 무대에 올리기 위한 오디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같은 상황을 한번은 슬프게, 또 한 번은 화를 내며 표현하는 오디션을 거쳐 20여 명의 수감자들이 로마제국 정치가들 역을 하나씩 맡는다.

  마약 밀매자(지오반니 아르쿠리)는 시저역을 맡고, 조폭 범죄자(살바토레 스트리아노)는 브루투스역을 맡고, 살인범(코시모 레가)은 교활한 음모가 카시우스역을 맡는다. 이들은 모두 심각한 범죄로 종신형 내지 장기복역에 처해진 이들이다. 시저가 총애하던 양자 브루투스로부터 암살당하는 사건을 정점으로 한 연극은 감옥 복도와 도서관, 마당을 누비며 6개월간 연습에 들어간다.

참회로 가는 예술과 공정 시스템…사회를 치유하는 처방

  조악한 종이칼과 간단한 망토를 두른 채 지역어로 연습하면서 이들은 점차 변해간다. 오래전 로마의 권력가와 현재의 수감자라는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외우며 되풀이하는 대사에는 믿음과 배신, 음모와 살인, 진실의 가치와 고통이 깊게 배어있다. 이들은 대사를 외우며 연기를 하다가 불현듯 과거 자신의 모습과 부딪힌다. 독재자가 된 시저를 처치하기로 결심하는 고뇌에 사로잡힌 브루투스역은 자신의 범죄 과정이 되살아나 고통을 겪는다. 범죄를 저지르며 고민했던 악몽이 떠올라 더 이상 연습을 못하겠노라고 거부하는 이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이라고 해서 모두 참회하고 반성하며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심경의 변화가 변신작업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시공을 넘어 복잡다단한 삶의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셰익스피어 명대사도 훌륭하지만, 수감자들의 은닉된 심성을 끌어내는 카발리 연출가의 ‘자유연상기법’이 탁월하다. 어떤 도덕적 설교도 인간을 바꾸지 못하지만, 예술은 인간을 바꾸는 힘이 있다, 라는 명제를 실감나게 한다.

  소박한 교도소 무대가 초청객들의 환호 속에 막을 내리고 배우들은 좁은 방으로 돌아간다. 교도소 생활을 그럭저럭 영위하던 중형의 수감자는 토로한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라고. 성찰의 울림이 강한 이 고백을 듣노라니 우리의 아픈 현실이 겹쳐진다. 뉘우치지 않는 강자들에게 <시저는 죽어야 한다> 만들기처럼 자신의 처지를 참회하는 공정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 그것이 사회의 우울을 치유하는 건강 회복책 처방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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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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