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목민심서』는 역시 명저이고 고전입니다. 전체 72개 조항, 어느 것 하나 깊이 새겨 읽을 항목이 아닌 것이 없지만, 봉공(奉公)편의 수법(守法) 조항은 유독 현대인들에게 더욱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보통의 세상을 경륜하는 이야기야, 수법, 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면 끝날 일이지만 다산은 보통의 논리와는 분명히 다르게 수법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새로운 개념의 법의식을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법을 지키는 준법정신, 너무나 당연한 대원칙입니다. 그러나 다산은 법을 법대로만 묵수(黙守)하다보면, 법을 지키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니, 법을 지키되, 앞뒤의 사정을 고려하여 상관의 명령도 따르고 행정지시에도 응해야 한다는 초현대적 생각을 지녔던 분입니다. 요즘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문제와 경찰청장의 부당한 명령 여부(與否)에 대한 논란에 대해 다산의 『목민심서』는 우리에게 어떤 지혜를 가르쳐 줄까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어서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보도를 통해서 살펴보면 국정원과 경찰청은 뭔가 개운치 않은 일을 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당에서는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해서라도 부당한 상관의 지시에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룰을 깨서 부당한 명령이나 잘못된 행정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산은 200년 전에 이미 법의 규정 유무를 떠나 공직자라면 공직윤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 공직윤리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다산은 말했습니다. “중국의 명나라 법에는 암행어사나 상사(上司)의 나쁜 행정법령이나 부당한 명령에는 강력히 항의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우리 조선에는 오로지 체통만 지키느라 부당한 윗사람의 명령에 한마디도 말하지 못해 민생(民生)이 파탄 나고 만다.”라고 말했습니다. “상사(上司)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히 자신을 지키도록 할 것이다. (봉공·예제)”라고 선언했습니다. “비록 상사가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 (봉공·수법)”라고도 했습니다. 봉건전제국가이던 조선왕조, 그런 나라에서도 다산은 그런 주장을 했는데, 대명천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당한 상사의 명령이나 행정지시에, 무조건 복종만 해야 공직이 유지되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법을 지키며, 솔선수범해야 할 권력기관에서, 다산이 말하는 수법(守法)도 못한다면 이게 어떻게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산은 이론만이 아니라 공무집행 현장에서도, 부당한 임금의 명령은 따르지 않았고, 잘못된 상관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으면서, 그것을 시정하게 한 뒤에야 법을 집행하고 행정을 폈습니다. 부당한 명령·행정을 지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에 항의하지 못하고 따르기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런 것만이라도 바로 잡아야 다산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