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봉곡사 (鳳谷寺) ... 숲길 그리고 만공선사

문근영 2013. 7. 1. 01:35

 

 

 

 

                                            봉곡사    鳳谷寺

 

 

 

 

 

 

 

 

 

 

 

 

 

 

 

 

봉곡사(鳳谷寺)는 신라 51대 진선여왕, 887년 2월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山이 봉(鳳)의 머리 같다고 하여 봉수산(鳳首山)이라 하고, 절의 이름을 석암(石庵)이라 불렀다. 그 후 고려시절 1170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였다.

 

 

 

世宗시절에는 함허대화상이 다시 중창하였는데, 당시에는 암자만 하여도 상암(上庵), 벽련암(碧蓮庵), 보조암(補助庵), 태화암(泰和庵) 등의 산내 암자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1584년(선조 17)에 화암거사가 중수하고, 산 이름인 봉수산과 걸맞게 사찰의 이름도 "봉황이 깃드는 곳"이라고 하여 봉서암(鳳棲庵)이라 고쳐 불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本殿과 여섯 암자들이 전부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4)에 다시 중창되었다. 그 후 1794년(正祖 18)에 궤한화상이 중수하고 山 이름을 태화산(泰和山)으로 바꾸고, 이 山이 봉(鳳)이 양쪽 날개를 떨치고 날으는 것과 같다고 하여 봉곡사(鳳谷寺)로 개칭하였다. 

 

 

1891년(고종 7)에 서봉화상이 법당 등을 중수하였고, 현재에 이르렀다. 이 곳 봉곡사에는 만공스님(萬空), 다산 정약용 등 선현과의 인연이 깊은 고찰이며, 봉곡사 현판은 탄허스님(呑虛)의 글씨이다.

 

 

 

 

 

 

 

 

 

 

                                                 창건 설화

 

 

 

 

봉곡사는 신라 말인 887년(진성왕 1)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구전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산 너머에서 절터를 닦고 목수들을 불러 재목을 다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들이 계속 밥을 물고 가기에 이상하게 여기고 뒤를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까마귀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주변을 불러보니 그 터가 현재 닦고 있는 터보다 좋은지라, 이곳으로 절을 옮겨 짓고 석암(石庵)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1150년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이 중창하였으며, 명칭을 석암 또는 석가암이라 하였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봉곡사 숲길

 

 

 

 

 

 

 

 

 

여행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다. 다른 생에서의 삶을 이승에서 한 번 살아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무엇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관광일지도 모른다.다른 생에서 삶을 살아 보는것,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일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역사의 흔적이 문화재에만 또렷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도역사의 한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위치하고 있는 봉곡사 숲은 지난 시대의 한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역사의 아픔을 이겨낸 훈장처럼 저마다 몸에 상처를 지닌 채 봉곡사 소나무는 말없는 증인처럼 묵묵히 숲을 지키고 있다.  

 

 

 

 

 

 

 

 

이곳 봉곡사 숲은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 천연림이다. 평균 높이 15m에, 수령은 아마 100여년 쯤 된다고 한다. 하지만 봉곡사 소나무는 다른 곳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밑동에 V자로 움푹 패인 자국이 나무마다 새겨져 있다. 어림잡아도 어른 머리 크기는 된다. 자연적을 생겼다고 하기에는 그모양이 인위적이고 흔적 또한 깊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초반, 日帝는 군수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일제는 석유대신 쓰려고 송진을 채취한다. 일제는 한반도의 소나무 숲에서 마구잡이로 송진을 채취하거나 마무를 벌채해 갔다. 그래도 봉곡사 소나무는 벌채를 면할 수 있었다. 봉곡사 승려들의 노력이었다. 그들은 소나무 밑동을 베지는못하고, 그저 소나무에 생채기를 내어 송진을 채취할 수 있었다. 그 아픔을 훈장처럼 간직한 채, 역사의 증인으로 봉곡사 숲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오래된 절집 들머리에는 대개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있다. 숲길을 걸어오르는 동안 세속의 때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라는 의미일까. 수십 수 백년을 함께 서서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 소나무, 참나무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마음 속까지 씻길 것 같은, 크고 깊고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 숲길이다.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신라 때 창건하였다는 봉곡사에 오르는 봉수산 자락 숲길이다. 지난 해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소너무 숲이다. 백년 안팎씩 묵은 큼직한 소나무들이 맑고 시원한 솔바람을 내어뿜는 700m 가량의 숲길이다.

 

 

 

산길은 오른쪽에 조그마한 골짜기를 거느리고 오른다. 실날같은 이 물줄기는 유곡천을 이루어 마을을 지나 송악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은 완만한데, 걸을수록 아쉽게 느껴지는것이 길 바닥이다. 굽이쳐 올라간 소나무숲길은 매우 아름답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 운치를 떨어트린다. 스니들을 위해 포장했다지만, 길의 정취는 절반 이상 잃어버린 꼴이다.소나무 숲길 끝자락에, 대나무숲에 기대앉은 봉곡사가 있다.     

 

 

 

 

 

 

 

 

 

 

 

 

 

 

                                              봉곡사와 만공스님

 

 

 

 

 

 

 

 

만공스님(滿空. 1871~1946)은  천장암에서 경허스님 밑에서 깨달음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1893년 23세 때 이곳 봉곡사로 옮겨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약 2년 동안 불철주야 무섭게 수행에 정진하였다.

 

 

 

 

 

 

 

 

 

1895년 7월 25일 새벽에 만공스님이 면벽 수행 중 홀연히 벽이 사라지고 동그란 원 (일원상.. 一圓相)이 나타나고, 새벽 종소리에 법을 깨달아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절에서는 만공탑을 세웠다. 만공은 " 세상의 모든것이 한 송이 꽃"이라고 하였다. 만공탑에 음각되어 있는 "세계일화(世界一花)"는 만공스님의 친필글씨이다.

                                        

 

 

 

 

 

 

 

 

 

 

 

 

 

 

                                   세계일화. 世界一花  ..만공(滿空)의 禪詩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허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흙이 있어야  풀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있는 법.

 

 

                     남편이 편해야 아내가 편하고, 아내가 편해야 남편이 편한 법,

                     남편과 아내도 한 송이 꽃, 부모와 자식도 한송이 꽃

                     이웃과 이웃도 한송이 꽃, 나라와 나라도 한송이 꽃이거늘

 

 

                    이 세상 모든 것이 한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을 바로 지니면 세상은 편한 것이요

                    세상은 한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니라

 

 

                    그래서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참 뜻을 펴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웠던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보아야 하며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 할 것이니라.

 

 

 

 

 

 

 

 

 

 

 

 

 

 

 

                                            봉곡사와 다산 정약용

 

 

 

 

 

1795년 겨울, 정3품 당상관에서 종6품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된 다산 정약용은 온양 서암(봉곡사)에서 목재 이삼환(木齋 李森煥 .. 성호 이익의 증손자)등 13명의 실학자들과 10일 동안 봉곡사에서 강학회를 열었다. 다산은 그 때의 일을 서암강학기(西巖講學記)에 남겨 주었다.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의 일이다.  여기서 금정이라함은 충청도 홍주에 소속된 역원(驛院)을 말한다. 

 

 

 

 

 

 

 

 

 

금정으로 좌천된 다산은 오랫만의 한가한 시간이었으므로 우리나라 실학의 개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문집을 정리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부근 예산에 성호 이익의 증손자 목재 이삼환이 살고있다. "찬란하게 빛나는 성호(郁郁星湖子)"라고 이익의 號, 星湖에다가 "자(子)"를 붙일 정도로 사숙하였던 정약용은 이삼환에게 편지를 보낸다. 

 

 

 

 

연전에 선생님이 서울로 오셨을 때 너무 바빠서 가슴 속에 쌓여있는 의심을 토로해서 대군자의 깊은 지식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늘 한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부임하여 머무른 곳이 마침 이곳이어서 선생님이 계신 곳과 거리가 몇십리에 지나지 않아서, 댁에 찾아가서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평소에 품었던 아름다운 회포를 풀 수 있을지 위로됩니다.   

 

 

 

 

 

                                               강학회 개최

 

 

 

 

그리고 다산은 이 편지에서 성호 이익을 기리는 강학회를 열자고 제의한다. " 아아 우리 성호선생님(星湖夫子)은 하늘이 내신 영걸스러운 인재로서 도가 망하고 교화가 해이해진 뒤에 나셔서 회재(晦齋 ..이언적)와 퇴계 이황을 사숙하여 심성의 학문과 경제의 사업을 경위로 삼아 수백여 편의 책을 저술하여 후학들에게 아름다운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성호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대하여 이가환형과 상의하시는지요?

 

 

정약용의 편지는 " 가까운 절간에서 화합해" 성호의 사상과 문집을 정리하자는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에  필요한 종이를 비롯하여 경비를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서암강학기"에서 봉곡사는 온양의 서쪽에 있는데 남쪽은 광덕산이요, 서쪽은 천방산이다. 산이 높은데다 첩첩이 쌓인 봉우리에 우거진 숲, 깊은 골짜기가 그윽하고 오묘해서 구경할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정약용이 눈 덮힌 봉곡사에 도착한 것은 1795년(정조 19) 음력 10월26일이었다. 이튿날 예순살에 접어든 이삼환이 도착하고 내포지역의 남인학자들이 차례로 모여들었다,. 모두 13명이었다. 강학회는 11월5일까지 열흘동안 계속되었는데, 참석자들은 새벽마다 개울로 나가서 얼음물로 씻었다.그들은 낮에는 성호의 유고를 정리하고 밤에는 학문에 대하여 강론하였는데, 이삼환이 좌장으로 질문하면 다른 선비들이 답하고 다른섭니가 모르는 것을 물으면 이삼환이 설명하는 식이었다.   

 

 

 

 

 

                                              대웅전     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청기와를 올려놓아 독특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건축 양식은 익공계(翼工系) 계통이며, 공포에 있는 연꽃이나 용 등의 장식이 건물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출처 : 김규봉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非山非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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