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순창 강천사1

문근영 2013. 6. 16. 07:13

 

강천사

절에서 전하기로는 887년(진성왕 1)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1316년(충숙왕 3)에 덕현(德賢) 스님이 중창하면서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서는 1482년(성종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을 통해 이 해에 절이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연문은 신말주(申末舟, 1439~?)의 부인 설씨가 적은 글로서

 당시 강천사의 중건에 관련된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다.

 신말주는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인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는 1470년(성종 1)에 순창에 내려가 오랫동안 있었다고 한다.

 이 모연문에 따르면 절은 옛날에 신령(信靈) 스님이

 광덕산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그곳에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절이 폐허가 되자

 중조(中照) 스님이 서원을 내어 시주를 모아 중창했는데,

 부근에 부도가 있으므로 절이름을 임시로 부도암으로 불렀으며,

 이 때 절은 비록 자그마한 규모였지만

 청정한 수도처로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절은 다시 퇴락되었고,

중조 스님은 설씨의 도움을 얻어 중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때의 중창은 설씨 부인의 힘이 매우 컸는데,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권위가 사회를 지배하던 당시에

 여인의 힘으로 큰 불사를 이룬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모연문에 나오는 절의 창건 부분이 절에서 전하는 내용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창 내력을 잘 전하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후 절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으나

1604년(선조 37)에 소요(逍遙)대사가 중창했다.

 한편 1760년(영조 36)에 출판된 『옥천군지』에는

 당시 절의 부속암자로 명적암 ? 용대암 ? 연대암 ? 왕주암 ? 적지암 등 5개 암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절의 규모가 컸음을 집작케 한다.

 이어서 1855년(철종 6)에는 금용(金容) 스님이 중창했다. -모셔온 글-

 

 

 

 

 

평풍 바위

 이 바위는 평풍 바위를 비단 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 평풍 바위밑를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 해진다.

아 !!! 깨끗 !!!

 

 

 

 

 

 물은 너무 깨끗하고 햇살을 받아 반짝 반짝  빛이 난다

 통 나무 다리

 

 

 매타세쿼이아 나무

우리 영덕 강구서 영덕 들어 오는 마이 웨딩홀 앞에 이 나무가 있음

 

 해라 엄마 맨발로 걷고 있네요.

해라는 이 더운 날씨에 버스에서 꿈 나라로 go go~~

 

 

 

 냇가에 탑들이 갈매기가 앉아 있는 것 같지요.

비가 와서 홍수가 지면 무너 지고 또 쌓고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시작이 있죠.

 

출처 : 엄마야의 행복한 집
글쓴이 : 엄마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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