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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시대에도 ‘팬덤’이 있었다 [김영죽]

문근영 2013. 5. 15. 07:01

 

제268호
조선시대에도 ‘팬덤’이 있었다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요즘처럼 커뮤니티의 종류가 다양한 시대는 없었던 듯싶다. 취미를 함께하고, 같은 지점을 향해 의견을 공유하는 통로가 그만큼 많아졌다. SNS를 통해서 순식간에 몇 천, 몇 만 명에게 어떤 사회적 이슈가 던져진다. 이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전달하고 동의를 얻고, 반박하는데 단 몇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과 비슷한 그들과 함께 할 방법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쉬워졌다.

  가끔은 무언가에 열광하는 이런 힘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해하려는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번거롭지만, 그래야 세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일련의 문화현상들을 보면서, 늘 궁금했다. 전통시대의 커뮤니티는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었을까? 그 출발점도 역시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을까? 그 시대와 현재를 함께 이야기 해줄 만한 공통적인 요소가 발견될 때, 소통의 근원을 고전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소동파(蘇東坡)를 사랑하는 열풍…식을 줄 몰라

  팬덤(fandom)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자의 눈에는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를 위시한 지식인들의 소동파 흠모 현상과 ‘팬덤’이 겹쳐진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명실상부 19세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금석 고증학의 대가, 예술가 등등의 수많은 이름이 따라다니는 거학(巨學)이다. 추사가 당시 학계를 주도하였던 만큼, 그를 따르던 문인재사(文人才士)들도 이루 다 셀 수 없다. 그 계층의 폭도 두터워서, 사대부 문인부터 역관, 서리를 포함한 중인층까지 아울렀다. 추사 김정희를 추숭하는 학인들은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추사가 연경(燕京)에 다녀온 후에는 그의 학예에 반한 청조 문인들도 많아졌다.

  그러한 그에게도 흠모의 대상이 있었다. 바로 송대의 문인학자였던 소식(蘇軾, 東坡)이다. 물론, 소동파에 대한 열풍은 조선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19세기, 추사 김정희와 일군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불었던 그것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소동파의 생일에 초상화를 걸어 놓고 함께 제사를 지내며 추모하기도 하고,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소동파의 모습을 똑같이 흉내 내기도 했다. 번안해서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소치(小癡) 허유(許維)가 유배지에 있던 추사를 위해 소동파와 비슷한 모습의 초상화를 그려 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소동파에 대한 애정은 추사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당시 추사와 친분이 있었던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에게서도 역시 소동파의 인기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서리 출신의 중인이었다. 그의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작년에는 호남에서 대나무 삿갓 사오고           去年湖南買篛笠
               금년에는 영남에서 오동나무 나막신 사왔지     今年嶠南買桐屐
               두 가지 모두 촌 늙은이에 잘 어울린다네         二者恰稱田舍翁
                                                  …
               소동파 소상(小像)과 너무도 흡사하니            東坡小像大仿似
               관동들 박수 치며 이처럼 호들갑                   官僮拍手諠如此

  추재는 아예 소동파 분장을 하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관동들까지 “소동파와 똑같아요”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고 하니, 이는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유행했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이 소식을 들었던 우당(羽堂) 조병현(趙秉鉉)은 도대체 그 나막신은 어디에서 구한 것이냐며 관심을 보이기까지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문화현상이다. 그 이면에는, 당시 옹방강(翁方綱)이라는 청조 학자를 중심으로 한 소동파 열기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을 간과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흠모의 대상 하나만으로 국경을 넘어서 유대감을 형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상들이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대상에 대한 열정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팬덤은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러한 현상이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그 문화적 영향력을 형성한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유대감을 형성하고 활기를 띤다. 이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소동파는 당시 지식인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문화코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생각해보면, 추사와 소동파와의 시대적 간극이 800년 가까이 된다. 우리와 추사시대의 간극은 이에 비하면 그 반도 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동아시아 소통의 키워드를 고전에서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추사시대의 소동파 열풍과 문화적 유대감은 ‘동아시아’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힌트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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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 한문학과 강사
논저 :
< 추재 조수삼의 연행시와 「외이죽지사」>(2008)
< 조선 후기 죽지사를 통해 본 18,19세기 중인층 지식인의 타자 인식
-조선 후기 서리 출신 추재 조수삼의 작품 연구를 중심으로->(2011)
<19세기 중인층지식인의 해외체험일고>(2011)
<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1~3>, 전통문화연구회, 2011 (공역)
< 열하기행시주; 열하를 여행하며 시를 짓다>, 휴머니스트, 2010 (공역)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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