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42-권충재의 아름다운 정자 _ 청암정과 석천정사

문근영 2013. 4. 17. 07:23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42-권충재의 아름다운 정자 _ 청암정과 석천정사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닭실마을 전경(좌측 끝집이 충재고택)


청암정


청암정 펜화


청암정 다리


청암정 내부(정면의 편액이 미수 허목의 글씨)


청암정 후면


충재


충재고택


충재를 모신 사당


석천정사 가는 소나무 길


비룡폭


석천정사


석천정사 내부


석천정사 뒷편의 샘


석천정사 앞 계곡

 

                               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42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


  조선 중종 때 경회루에서 어전연회가 끝난 뒤 근사록(近思錄)이란 책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고를 받은 중종은 “그 책은 권벌(權?)이 보던 책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충재(?齋) 권벌이 소맷자락에 넣고 다니며 애독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려 공민왕 때 간행된 근사록은 성리학의 중요한 내용만을 골라서 편찬한 독본입니다.

    책읽기 좋아하고 성격이 강직하였던 충재선생의 옛집이 경북 봉화군 유곡리 닭실마을에 있습니다.
고택에는 충재선생이 아끼던 ‘근사록’이 보물 제262호로, ‘충재일기’ 7책이 보물 제261호로, 중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책들이 보물 제896호로,
교서. 재산 분재기(分財記). 호적단자 등 고문서가 보물 제901호, 충재와 퇴계 등의 서첩과 글씨가 보물 제902호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한집에 보물이 5점이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충재선생의 책에 대한 애정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6.25동란 때 많은 책과 문서들을 독에 담아 땅속에 묻어 분실을 막은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에 빛을 본 것이지요.

 
    충재고택에 청암정(靑巖亭)이란 빼어난 정자가 있습니다.
충재선생이 1526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펜화를 그리며 여러 정자를 보았으나 이처럼 개성이 넘치는 정자는 기억에 없습니다.
거북모양의 큰 바위위에 정자를 짓고 주위의 땅을 파고 둑을 쌓아서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거북이가 정자를 지고 물속에서 노는 모양입니다.
둑에는 느티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등을 돌려 심어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조원계획입니다.
충재선생의 미적 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집터를 잡을 때 거북바위를 보고 잡지 않았을까요?

 
    6칸 넓이의 누대에 2칸 넓이의 긴 마루방 건물을 붙여서 “丁”자 모양의 특이한 정자가 되었습니다.
마루방은 양측에 퇴를 내고 3면에 계자난간을 둘러 멋과 실용을 겸하였습니다.
누대는 팔작지붕 건물로 3면이 터졌고 마루방 건물은 맞배지붕 건물로
사방에 10짝의 문을 달았습니다.
누대와 마루방 사이에는 두꺼운 종이를 양면에 바른 맹장지문을 들어 올리게 하여
마루를 넓게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외벽에는 나무판을 댄 골판문을 달아 추위를 막게 하였구요.

 
    이런 구조의 마루방은 온돌이 제격인데 왜 마루방으로 만들었을 까요?
처음에는 온돌을 들였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승이 지나가다가 정자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여기는 연기가 날 자리가 아니다. 거북이 등에 불을 때면 되겠느냐”고 충고를 하여
마루방으로 바꾸었답니다.
온돌이 없으니 추운 날에는 청암정 앞에 지은 3칸짜리 서재인
충재(?齋)에서 지냈을 것입니다.

 
    청암정으로 오르는 돌다리도 독특하고 멋진 다리입니다.
연못 속에 작은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긴 장대석을 놓아 만든 튼튼한 돌다리는
후손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입니다.
정자 앞의 계단도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것입니다.
충재선생이 얼마나 공을 들여 청암정을 지었는지 계단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청암정 연못 바닥이 주변 논보다 높아서 물이 쉽게 빠지기 때문에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물을 제일 먼저 청암정에 끌어들인 후 논에 댔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논에 물을 대고 나서야 차례가 오기 때문에
연못에 물이 제대로 찬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이 없으니 연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이상한 점이 눈에 뜨였습니다.
팔작지붕의 처마 선이 직선이 아니겠습니까?
후손에게 물어보니 여러 해 전에 보수 공사를 하면서 그렇게 되었답니다.
공사를 맡은 사람은 물론 감독관청에 까지 항의를 했는데도 그냥 통과가 되더랍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팔작지붕의 처마선이 곡선인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기초 상식인데
어찌 이리 몰상식 하게 일을 합니까.
최고의 문화재를 최악의 인간들이 흠집을 낸 것입니다.
이런 나쁜 인간들을 ‘공공의 적’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악의 축’ 이라고 할까요.
펜화에는 처마를 약간 곡선으로 수정하여 그렸는데도 어색해 보입니다.
군청에 물어보니 내년에 지붕을 제대로 고쳐놓을 계획이 잡혀있답니다.
공사를 하는 김에 우물을 파고 펌프를 달아 연못에 항상 물이 차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기대 하십시오.
내년부터는 찰랑거리는 물에 연꽃이 핀 제대로 된 청암정을 보실 수 있답니다.

 
    청암정은 50여명이 올라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넓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교유하기를 즐긴 충재선생의 마음 크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청암정에는 퇴계 이황, 미수 허목등의 명필 글씨가 걸려있습니다.

 
    청암정을 보신 후 마을 앞의 개울을 건너 소나무 길을 따라 서쪽으로 돌아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수려한 계곡에 석천정사(石泉精舍)를 만나게 됩니다.
충재의 큰아들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가 1535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제법 큰 정자에는 2칸짜리 익랑이 달려있습니다.
정자 뒤 바위틈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샘이 있어 석천정사가 되었나봅니다.
계곡 쪽 골판문을 전부 열면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과 울창한 소나무 숲의 시원한 풍경이
마루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석천정사 앞 계곡물에 발을 식히며 마음의 끈을 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세요.
아이들이 딸린 가족이라면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본 후 계곡에서 도시락을 먹고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여름철 답사코스로 안성맞춤이랍니다.


그림. 글. 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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