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앞에서 여러 번 응시했으나 / 屢應臨軒試 마침내 포의(布衣)벗는 영광 얻었네 / 終紆釋褐榮 하늘의 조화(造化)란 깊기도 해서 / 上天深造化 하찮은 사람 후하게 키워주셨네 / 微物厚生成 둔하고 졸렬해 임무수행 어렵겠지만 / 鈍拙難充使 공정과 청렴으로 지성껏 봉사하리 / 公廉願效誠 임금님의 격려말씀 많기도 해서 / 玉音多激勵 그런대로 나이든 아버님 위로되셨네 / 頗慰老親情
「정월27일 문과에 급제하고 (正月卄七日賜第 熙政堂上謁 退而有作)」 초시(初試)나 반시(泮試: 성균관 생도들에게 보이는 시험)등 여러 차례 수석(首席)으로 합격했으나 전시(殿試: 임금이 친히 참석한 시험)에는 끝내 응할 수 없었던 다산, 마침내 28세의 정월 27일 임금님이 직접 참관한 과거시험에서 갑과(甲科) 2등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일등인 장원은 결격사유로 급제가 취소되었으니 실제로는 다산이 장원급제한 셈입니다. 국가에 인재를 얻었다는 기쁨에 합격자인 다산보다도 더 좋아한 사람은 바로 정조임금이었습니다. 백 년 만에 처음으로 한 사람의 재상이 태어난 날이라고 흐뭇하면서 자상하게 여러 가지로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임금이 이렇게 기뻐하였다면 합격자 본인인 다산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22세에 진사과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갈고 닦은 실력이 6년이 지난 이때에서 발휘되었으니 본인의 영광이자 가문의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한 시가 바로 앞의 시 입니다. 하늘의 조화가 깊었던 이유로 자신 같은 하자 많은 사람이 급제할 수 있었다고 하늘의 뜻에 영광을 바치고, 여러 차례 수석을 하고도 마지막 시험에는 응할 수도 없었지만 하늘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합격시켜주었다고 기쁨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둔하고 졸렬한 사람으로 국가에 봉사할 능력이 없다고 겸손해하면서, ‘공렴(公廉:공정과 청렴)’을 기본으로 삼아 정성을 다해 나라에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표명했습니다. 다산은 과거급제 이후, 비록 1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했지만, 그 기간에 맡았던 모든 직책에서 참으로 공정·청렴이라는 덕목으로 온갖 정성을 바쳐 공무에 임했습니다. 내직(內職)에 있을 때 지평(持平)이라는 벼슬에 있으며 무과(武科)시험의 감독관이 된 적이 있는데 참으로 공정한 감독관으로 시골의 이름 없는 가문 출신이지만 능력만 있으면 합격시켜 세상에 없는 공정한 시험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암행어사로 농촌의 지방관 업무현황과 실상을 파악하는데도 공정하고 청렴한 활동으로 탐관오리들을 무섭게 징치한 적도 있습니다. 황해도 곡산도호부사인 목민관으로 나가서는 공렴에 기본하여 그 조그마한 군을 유토피아로 만들어냈습니다. 형조참의로 형사사건을 엄정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여 억울한 죄수가 없도록 온갖 지성을 바쳤습니다. 다산은 일생동안 그 두 글자로 살았습니다. 이런 다산의 공렴정신은 그의 명저 『목민심서』에도 그대로 들어나 공렴과 지성이 없는 목민관은 백성을 위하는 공직자가 아니라고 역설했습니다. 요즘 고관대작이 마구 탄생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공렴과 지성을 구비한 공직자일까요. 보도를 보면서 공렴하고 지성스러운 공직자가 많은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