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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기 표절 [송재소]

문근영 2013. 4. 16. 07:12

 

 
제 644 호
자기 표절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근혜 정부를 이끌어갈 새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어느 때나 그렇듯이 이번 인사청문회에도 본인 및 아들의 병역 문제, 부동산 보유와 위장전입 그리고 논문 표절이 단골 메뉴로 올랐다. 막중한 국사를 수행해야 할 인물들의 능력과 자질과 도덕성을 사전에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대학교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의 논문 표절은 더욱 철저히 검증되어야 마땅하다.

표절은 도둑질이다

  ‘표절(剽竊)’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의 시가(詩歌) ‧ 문장 등의 설(說), 또는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의 것으로 발표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각고의 노력 끝에 세운 학설이나 그 사람의 글을 몰래 가져와 자기 것으로 삼는 일은,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훔친 물건을 자기 물건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이는 분명 절도 행위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표절을 가장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하여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며칠 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의 교수가 10여 년 전에 발표한 논문 한 편이 표절임이 판명되어 스스로 사직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처럼 표절은 학자로서 가장 파렴치한 행위로 여겨진다.

  표절은 옛날에도 있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는 ‘아홉 가지 옳지 않은 글’을 열거하는 가운데 ‘졸도 이금체(拙盜易擒體)’ 즉 ‘졸렬한 도둑이 쉽게 붙잡히는 글’을 두 번째로 꼽았다. 이것은 옛사람의 글을 표절하다가 쉽게 탄로 나는 글이란 뜻이다. 이규보도 표절하는 자를 ‘도둑’이라 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송지문(宋之問)은 사위가 쓴 시가 마음에 들어 자기에게 달라고 했는데 사위가 끝내 거절하자 사위를 몰래 죽이고 그 시를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것은 도둑이 아니라 강도라 해야 마땅하다.

자기 표절도 도둑질인가?

  그런데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지적되는 것이 이른바 ‘자기 표절’이다. 자기 표절이란, 자신이 쓴 논문의 일부를 다른 논문에 가져다 쓰는 행위인데 이것은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청문회에서 거론된 자기 표절의 예를 들어본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 후보의 박사학위 논문에 기존에 자신이 발표했던 논문 2개의 본문 내용 4곳과 연구 데이터 7개를 자기 표절했다고 질타했다. 이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도대체 ‘자기 표절’이란 용어부터 부적절하다. 표절이란 문자 그대로 도둑질하는 것인데 자기 글을 자기가 가져다 쓴 것을 도둑질이라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연구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제목만 바꿔 중복 게재한다면 이는 표절 시비를 떠나서 학자적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한 논문의 논지 전개에 필요하다면 비록 자신이 썼던 논문이라도 그 일부를 다시 가져다 쓸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논문이라도 출처를 밝힐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다산(茶山)이나 퇴계(退溪)의 글을 읽다 보면 중복되는 내용의 글이 수도 없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인(仁)에 대한 다산의 독창적 견해는 여러 곳에 반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오늘의 잣대로 보면 다산도 자기 표절을 한 셈이 된다. 나는 청문회를 거쳐 공직을 맡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만일 내가 청문회장에 선다면 자기 표절을 한 학자로 몰매를 맞을 것이 틀림없다.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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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재소

· 성균관대 명예교수
· 다산연구소 이사
· 퇴계학연구원 부원장
· 실시학사 이사
· 순암기념사업회 회장

· 저서 : 『다산시선』(역주)
           『다산시 연구』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한국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한국한시 작가열전』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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