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산 정약용이 공개하려 하지 않았던 글 `秘本`

문근영 2013. 4. 8. 07:17
다산 정약용이 공개하려 하지 않았던 글 '秘本'

실학박물관, 다산 체취 깃든 여유당전서 특별전...한국학중앙연구원이 위탁관리 중인 문화재청 소장 장서각 고서 가운데는 열수전서(列水全書) 속집(續集. 전 10책) 중 제8책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겉표지에는 '묘지명 비본'(墓誌銘秘本)이라는 제목이 적혔다.

열수전서는 다산 정약용이 자신의 저술을 종합한 문집이며 묘지명은 죽은 사람의 행적과 그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이다.

지금껏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묘지명에 적힌 '비본'은 무슨 뜻이며, 왜 이 묘지명은 비본이 되어야 했을까. 나아가 누가 이 묘지명을 '비본'으로 분류했을까.

경기 남양주시 팔당호 주변 다산 묘소 근처에 최근 문을 연 경기문화재단 산하 실학박물관의 안병직 관장은 한중연에서 대여한 이 묘지명을 검토하고는 "이를 '비본'으로 분류한 것은 다름 아닌 다산 자신이며 이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필연적으로 '비본'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사 전공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이기도 한 안 관장의 분석에 따르면 이 묘지명 문집에는 이가환(李家煥) 이기양(李基讓) 권철신(權哲身) 정약전(丁若銓) 및 다산 본인의 자찬(自撰) 묘지명이 수록됐으며 이들은 모두 신유사옥으로 장살(杖殺. 몽둥이로 쳐 죽임)되거나 유배된 사람들이다.

 

※열수전서 묘지명(왼쪽)과 경세유표(오른쪽)

그러므로 이들 묘지명에는 그들을 박해한 자들을 원망하거나 원한에 찬 논자가 많아 다산으로서는 이런 글을 즉각 공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안 관장은 덧붙였다.

 

※여유당집 매씨상서(매씨서평) 중 두주(頭注)

나아가 안 관장은 이런 내용이 담긴 열수전서는 다산 자신이 직접 편찬에 관여한 문집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다른 어떤 다산 글의 판본보다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 비본 '묘지명'을 포함한 다산의 가장본(家藏本)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이 실학박물관에서 오는 6/12일 개막한다.

이번 기획전은 '다산과 가장본 여유당집(與猶堂集)'이라는 주제가 명시하듯 다산 집안에서 소장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외 여러 기관에 분산된 다산의 글을 한자리에 모은 것으로 오는 10월3일까지 이어진다.

안 관장은 이번에 모은 가장본 대부분이 다산 자신이 생전에 직접 정리한 일종의 '육성 테이프'라고 평가한다. 이를 증명하듯 가장본 상당수에서 다산 자신이 글자를 교정하거나 문구를 보태거나 빼려 한 부호가 발견되고 있다.

예컨대 경세유표(經世遺表)에는 몇 곳에서 붉은색 두주(頭注. 본문 위에 별도로 적은 글)가 확인되는가 하면, 단국대 연민문고 소장 목민심서(牧民心書) 필사본(49권 16책중 7~9권 1책) 또한 곳곳에서 두주나 보유(補遺. 보충해서 넣을 글)가 드러났다.

장서각 소장 여유당집 잡문(雜文)에는 곳곳에서 글자마다 제거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 '刪'(산)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안 관장은 이들 가장본을 검토한 결과 "1930년대 중반에 위당 정인보 등이 주동이 되어 활자로 인쇄한 여유당전서가 다산 가장본의 수정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른 선본(善本) 문집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다산 저술에 대한 광범위한 텍스트 교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조선후기 사상사 전공인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다산 저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한 연구는 그의 저술 원본 대부분이 미공개 상태인 까닭에 미비하기 짝이 없다"면서 "이번 특별전은 다산의 저술이 다산 자신의 어떠한 수정 과정을 거쳤으며, 후대로 오면서 또 어떻게 변모하게 됐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다산학 연구의 획기를 마련했다고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