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토오루는 1936년의 달리조사 결과 보고에 해당하는 글을 일본민속학회의 기관지인 '민족학연구' 21권 4호(1957)에 발표했다. 거기서는 달리 마을의 생업과 공동제사·동회 등에 대한 설명과 생활용품에 대한 해설을 볼 수 있다.
오가와 토오루의 글에 따르면 1936년 당시 달리는 지역적으로 크게 4개의 소구로 나뉘었다. 그 소구를 '깍단', 혹은 '이리'라고 하는데, 동쪽의 '동쪽 깍단', 중앙의 '복판 깍단', 서쪽의 '서쪽 깍단(옹기전 깐단으로 불림), 북쪽의 '심복 깍단'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중에서 동쪽과 중앙의 2소구를 합하여 '단지 깍단'이라 했다. 단지는 달리의 옛 지명이었다. 조사 당시 달리 유지들의 집은 이 지구에 집중돼 있었다.
◇ 타작마당
현재 달동 경로당 남서쪽에 타작마당이 있었는데, 약400평~500평의 광장이었다. 이곳에서 동네 주민은 보리 등의 곡식을 말리기도 했고, 도리깨를 이용해 타작했다.
-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박물관(관장 김우림)은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특별기획전을 2012년 2월5일까지 시민에게 개방한다. 미야모토 기념재단이 소장한 동사 앞에서이 위생조사 모습 사진이다. (사진=울산박물관 제공) gogo@newsis.com 2011-12-03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은 마을 중앙의 높은 언덕의 아래쪽에 있었다. 1967년 토지구획정리를 하면서 제당은 서당산(현재 달동주공아파트 일원) 당산나무 아래로 옮겼는데, 1980년대 중반 사라졌다.
◇ 동사(洞舍)
현재 달동 경로당이 있던 곳에는 동사가 있었다. 동사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곳이며, 공동 작업터였다.
동사 앞에는 큰 살구나무 한 그루와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어, 여름에 주민이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했다.
매년 동제(洞祭)를 준비할 때는 동네 사람들이 동사에 모여 회의를 하고 대표를 선출했다. 동네 행사 일정과 마을 공동기금에 대한 보고도 동사에서 했는데, 마을의 일을 의논하던 장소였다.
-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박물관(관장 김우림)은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특별기획전을 2012년 2월5일까지 시민에게 개방한다. 미야모토 기념재단이 소장한 '달리 우물가' 사진이다. (사진=울산박물관 제공) gogo@newsis.com 2011-12-03
동사는 일제 강점기에 국민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강남국민학교가 육군병원의 분동으로 징발됨에 따라 임시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 농촌위생조사단이 남긴 선물 '우물'
농촌위생조사를 마친 조사단원은 달리 마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위생적인 우물이라 생각했다. 이에 두 개의 우물을 파서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그 옆에는 '의학위생조사단 기념'이라는 표시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시부사와 케이조의 기록에 보면 1939년 여름 한국에는 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그때 파놓은 기념 우물 한 곳은 말랐으나, 한 곳은 물이 충분해서 마을 사람 모두가 이 우물에 의존해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달리에서 온 박춘석에게 들었다고 했다.
◇ 달리의 식수
-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박물관(관장 김우림)은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특별기획전을 2012년 2월5일까지 시민에게 개방한다. 사진은 1930년대 울산비행장 사진엽서다. 달리 의용소방대 발회식 사진으로 강정택이 조직한 민간 소방대이다. 맨 앞줄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강정택이다. (사진=울산박물관 제공) gogo@newsis.com 2011-12-03
위생조사 당시 달리에는 음료수용 우물이 10개 있었는데, 그 가운데 7개는 개인 소유였다. 대부분 농가는 3개의 공동우물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식수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편 울산의 상수도사업은 1934년 5월 12일 기공식을 했는데, 1935년 말 준공됐다. 1935년 12월 17일 경남지사와 많은 울산 읍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수식을 열었다. 그러나 식수는 여전히 상수도 보다는 우물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았다.
◇ 불종과 강정택
동사의 대추나무에 종을 매달아 두었는데, 강정택은 이 종을 마을에 긴급한 일이 생긴다거나 불이 났을 때, 종을 쳐서 긴급 상황이 있음을 알리는 데 사용하도록 했다. 해서 이 종은 '불종'이라 불렸다.
강정택은 동사에서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활동을 했다. 낮에는 서당으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고, 저녁에는 야학당으로 어른들을 가르쳤다.
-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박물관(관장 김우림)은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특별기획전을 2012년 2월5일까지 시민에게 개방한다. 사진은 1930년대 울산비행장 사진엽서다. 달동 경로당 앞에 걸려있는 불종이다. (사진=울산박물관 제공) gogo@newsis.com 2011-12-03
◇ 비행장이 보이는 마을 '달리'
달리 마을 동쪽에는 비행장이 있었다. 울산에 비행장은 1928년 12월 2일 개장했다. 위치는 삼산평야 일대로 현재 현대백화점 부근에서 달동 문화공원과 남구청 앞 네거리까지 걸쳐 있었다.
울산에 비행장이 설치된 것은 일본 본토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조건이 유리했고, 당시 짧은 비행거리를 고려해 한·일간 최단거리에 있던 점이 고려 대상이 됐다.
면적은 약 20만㎡에 활주로 길이는 600m였다. 1029년 4월 항공우편, 9월부터 여객 수송을 했는데, 일본항공수송 주식회사가 담당했다.
울산비행장은 1935년 제2기 공사를 벌여 약 13만㎡를 더 확장했다. 하지만 1936년부터 시작된 '조선항공 2기 확충계획'에 따른 대구비행장 설치공사가 시작되면서 폐쇄위기를 맞았다.
울산 사람들은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1938년 10월 울산비행장은 폐쇄됐고, 불시 착륙장으로만 이용됐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울산비행장은 1942년부터 일본군 비행훈련장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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