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왕위를사양하는 형제

문근영 2012. 11. 14. 14:34

옛날에 십사라는 왕이 네 사람의 왕비 를 거 느리고 살았
다 첫째 부인은 아들을 낳아 이 름을 라마리- 했는 데, 라마는 뛰
어난 용기 를 지닌 데다 힘이 장사여서 이무도 딩해 낼 이가 없
었다. 둘째 부인도 아들을 두었는데. 이 름을 라만이라 했다 셋
째 부인한테서도 아들이 하나 있어 이 름을 바라타라 불렀고 .
넷째 부인의 아들은 멸원악때깐펀’ 이라 했다
왕은 네 부인 가운데 셋째 부인을 가장 사랑하고 귀여워했
다, 왕은 어 느 날 셋째 부인에게 속삭였다
“지 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다 줄지라도 아깝지 않
겠소 . 그 러니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 든지 내게 말하시오 ”
그러자부인이 말했다.
‘·저 는 지 금 아무것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이다음 소원이
있으면 그때 말씀드리겠어요”

왕은 그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언약했다
그 뒤 왕은 중벙에 걸려 매우 위독해졌다 그래서 첫째 부인
이 낳은 태자 라마괄 지-기 대신 왕으로 삼고, 머리에 천관 ιμ
을 씌워 위염과 법도를 왕의 법과 같이 했다
셋째 부인은 왕을 간호하다가 병이 조금 나아지 는 걸 보고
자신의 지극 정성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라마 태자의 왕
위 계승을 보고 시기심이 생겨 왕에게 전날의 소원을 말했다
“이제 제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컨대, 라마를 폐하고
우리 아들 바라타를 왕위에 오르게 하소서"
왕은 이 말을 듣자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그것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이제 와서 큰아들을 폐하
자니 이미 왕으로 세운 터요‘ 그대로 두자니 전날의 언약을 저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십사왕은 젊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약
속을 어긴 일이 없었다 또 왕의 법에는 두말이 있을 수 없고,
먼저 한 말을 먼저 지키는 것이 그 도리였다‘
왕은 사랑하는 셋째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라미를 왕
위에서 폐하고, 그 의복과 천관을 벗겼다-
그때 둘째 아들 라만은분개해 폐위된 형에게 말했다
.형님은 뛰어난 용기와 힘이 있으면서 왜 이런 치욕을 당하
십니까7"
형은대답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면 불효가 된다. 그리고 셋째 어머니가 우
리 를 낳지 는 않았지만 부왕이 그분을 사랑하고 좋아하시니 우
리 어머니나 c}름이 없다. 동생 바라타는 성품이 온화하고 유
순해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는데, 지금 내가 폭력으로써 부모
와 동생 에게 해 를 끼칠 수 있겠느냐”
라만은 이와 같은 형의 말을 듣고서야 잠자코 있었다
이때 십사왕은 첫째와 둘째 왕자를 나라 밖에 있는 갚은 산
속으로 보내면서 열두 해가 지난 뒤에야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
을 허 락한다고 일렀다. 라마 형제 는 부왕의 명을 받들어 조금
의 원한도 없이 부모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는 멀 리 떨어져
있는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바라타 왕자는 그동안 다른 나라에 가 있었는데 , 곧 돌아오
게 한 후 왕위에 오르도록 했다 바라타는 예선부터 두 형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공경하던 사이였는 데.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논 부왕이 세상을 떠나버린 뒤였다. 그는 이 런 일이 모두자기
를 낳은 어머니가 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생모를 꾸짖었다
“어머님은 어째서 도리에 어 긋나는 일을 해 우리 집안을 망
치려 하십니까7"
그리고 큰어머니 를 그전보다 훨씬 더 공경했다
바라타는 곧 군사를 이끌고 두 형이 머 물고 있는 산속으로
달려갔다. 멀리 형들이 보이자 군사들을 그곳에 머 물 게 하고
혼자서 형들 앞으로 걸어갔다
바라타가오는 것을보고 라만이 형에게 말했다.
‘형넘은 전에 항상 우리 동생 바라타는 의리가 있고 겸손하
고 공손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온 것을
보니 우리 형제를 죽이려는 모양입니다 ”
형이 바라타에게 말했다
“동생은 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가?"
그러자 비라타가 형에게 말했다,
“길에서 혹시 도적 떼를 만날까 두려워 군사를 데리고 왔을
뿐이며, 다른 뜻은 조금도 없습니다. 형님은 어서 본국으로 돌
아가 나라를 맡아 다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형이 대답했다
“우리는 일찍이 부왕의 명을 받들어 이곳으로 왔는데, 지금
어떻게 돌아가겠느냐 만일 우리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사람
의 자식 된 도리가아닐뿐더러 부모님에게 불효가될 것이다 ..
바라타는 몇 번이고간청했지만형의 뜻은갈수록굳어 조금
도 웅직이지 않았다 바라티는 형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형이 선던 가죽신을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
왔다
새로 왕위에 오른 바라타는. 그 가죽신을 왕좌에 올려놓고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기를 마치 형을 대허듯 했다 그리고 자

주 그 산으로 사신을 보내어 형 들이 돌아오기 를 간청했지만,
그때마다 형 들은 부왕의 뜻을 어 길 수 없다변서 그 청을 거 절
했다
그 뒤에 도 바라타는 힌결같이 자주 사신을 보내어 형 들이 돌
아오기 를 간절히 청했다 마침내 형은 바라타 왕이 신 발 공경
하기 를 형 대하듯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동생의 지 극한 정에
마음이 움직여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바라타
왕은 왕위 를 사양해 형에게 돌렸다. 그러나 형도 사양했다
.. 부왕께서 동생 에게 주셨으니 , 나는 받을수없다”
동생도사양했다
‘형님은 맏아들입니다. 부왕의 위업을 이어받을 사람은 바
로형 님이어야합니다”
이와 같이 서 로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형이 다시 왕위에 올
랐다
그들은 형제끼리 우의가 돈독하고 화목했으므로 그 덕 이 나
라 안에 널리 떨쳐져 , 백성들끼리도 서로 받들어 섬기면서 효
도하고 화목했다 인심이 좋고 두터우니 비바람도 순조로워 나
라 안은 가는 데마다 오곡이 풍성하고 질 병이 없어 태평성세 를
노래했다
〈 잡보장경 제1권 >

 

꿈같은 이야기다. 정치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온갖 음모와 투쟁
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행되고 있는 오늘의 이 지구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정말 동화처럼 들린 다 그러 나 이 런 일 이 결코 허무맹랑
한 허구만은 아니다 부귀영화를 마다한 소부따父와 허유감由의 고
사를 들출 것 없이 우리 왕조사에도 드물긴 했지만 있었던 역사적
사질이다
오늘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테지만, 정
치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 인가는 정치를 모르는 사람
들까지도 익히 알고 있다 앞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라마’와 바라
타’ 같은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면 세상은 근원적 으로 달라질 것 이
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의 축적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가
장 관심을 쏟을 것 이다 그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그전에 세웠던
감옥은 텅텅 비어 쓸모가 없어질 것 이다 소득이 많고 적음이 문제
가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 이 제일 과제일 것 이므로 온갖 범죄와
재난, 공해 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나라에서라면 군대와 경찰은 막을 것도 감시할 일도 없
을 테니 낮잠 자는 일로 따분해질 것 이다 그들은 그런 권태에서 탈
출해 흙으로 돌아가 발목이 시도록 논밭을 가꿀 것이다 아,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들의 왕국에서 부
는 꽃바람이 오늘 우리들의 뜰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들의 속뜰
에머물게하소서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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