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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주도하는 공식적인 위령제나 기념식과는 달리 굿은 가슴 깊이 맺히고 응어리진 민초들의 한을 풀어주는 치유의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치유의 기능은 바로 예술의 본질이며, 그런 점에서 이날의 해원상생굿을 이끈 심방 정공철이야말로 어떤 제도권의 유명 예술가보다 더 예술의 본질에 근접한 진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공철은 세습무가 아니다. 국립 사대를 나온 그가 교단을 외면하고 마당판의 광대로서 심방 역할을 탁월하게 해낸 것은 타고난 끼나 팔자 탓이라고 해야겠지만, 고은 시인의 말대로 ‘안덕 계곡을 닮은’ 그의 기이한 외모와도 어울리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영화 <이재수의 난>에서도 심방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그는 심방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심방이 되기로 결심하고 피나는 수련 끝에 제주 큰굿의 전통을 잇는 심방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광대 시절에 그는 어떤 자리에서 “없는 사람의 없는 살림에도 밝은 웃음이 깃들고, 억울한 사람 억울함 풀고, 더불어 사는 맛을 되찾아 보자는 것이 문화운동이요, 바로 그것이 광대정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마다 사월이 오면/ 무자기축년 사삼시절이 되돌아오면/ 저승도 못 가고 이승도 못 오는/ 팔만 영혼을 부르는 심방이 되어/ 흩어진 봉두난발 송락에 감추고/ 갈적삼 도포에 오색요령 감상기 들고/ 신칼 잡아 초혼 이혼 삼혼을 부른다.” (김수열 시인의 <정심방>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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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어 다시 살아갈 힘과 희망을 주는 심방의 일은 때로 제주도를 벗어난 육지로 그를 불러내기도 한다. 가령 지난 2009년 3월 용산참사 진혼굿을 주도하면서 변방의 심방 정공철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절절하고 애끓는 사설을 들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광막한 벌판(제주 말로 ‘미여지뱅뒤’)의 가시나무에 이승의 옷을 걸어 놓고 떠나지 못한 채 헤매는 중음신들을 달래 나비와 바람으로 환생하도록 도와주는 그의 애틋한 심성이 가슴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짐작할 뿐이다.
정공철 같은 심방의 위무와 진혼을 기다리는 가엾은 영혼들은 지금도 ‘미여지뱅뒤’를 떠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수백 명의 시민들과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5월증후군 환자들, 해고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22명의 쌍용차 노동자들, 망국과 식민지배의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한 평생을 살다 간 정신대 할머니들, 지금도 자살충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농민과 학생들…
난세의 예술가는 심방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 변방의 심방 정공철, 그는 해원 상생의 본분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우리시대의 예술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