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홀로서 웃노라(獨笑) [박석무]

문근영 2012. 8. 10. 07:04

홀로서 웃노라(獨笑)

말을 주고받을 상대도 없이 홀로 방에 앉아 책이나 읽고 글이나 써야 했던 외롭고 쓸쓸했던 귀양살이, 웃음이 나와도 혼자서 아무도 몰래 웃어야만 했던 다산 정약용의 신세타령의 시 제목이 ‘독소(獨笑)’였습니다. 긴긴 여름의 낮과 겨울의 밤, 18년의 세월을 유배살이로 보냈던 다산, 말이 하고 싶고 색다른 생각만 떠오르면 그냥 시로 읊곤 했습니다. 옛 경서(經書)에도 “시는 뜻을 말함이다[詩言志]”라고 말하여, 말하며 함께 웃고 즐기거나, 서럽고 외로운 신세를 함께 한탄할 상대가 없을 때, 시를 짓는 선비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합니다. 2,500수가 훨씬 넘는 다산의 시는 대체로 그런 처지와 심정에서 지은 시가 많았습니다.

有粟無人食
多男必患飢
達官必憃愚
才者無所施
家室少完福
至道常陵遲
翁嗇子每蕩
婦慧郞必癡
月滿頻値雲
花開風誤之
物物盡如此
獨笑無人知

자식 없는 집안 곡식 있어도 먹을 사람 없고
자식 많은 집안이야 배고파 걱정이라네
고관대작이야 꼭 우둔해야 한다면
재주꾼들 써먹을 곳 없겠네
어느 집인들 온갖 복 갖춘 집 적고
너무 높이 오르면 내리막 길 그냥 오지
아비가 인색하면 자식은 늘상 방탕하고
아내 지혜 많으면 사내는 꼭 어리석다네
만월에는 구름이 자주 가리고
꽃이 한창이면 바람이 그냥 두지 않네
세상만사 모두가 그런 것이기에
홀로서 웃어보지만 아는 사람 없다네

1804년에 지었다는 시의 묶음 속에 들어 있는 시이니, 아마도 그런 때에 지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산의 나이 43세 때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던 강진 읍내에서 생활하던 때의 시라고 생각됩니다. 풀려날 기약도 없던 무한정의 귀양살이, 깊은 사념에 잠기면 가슴이 찢어지는 비탄의 생각만 떠오르고, 아내가 그립고, 자식들이 보고 싶을 때, 그런 모든 시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시로써 울적한 마음을 풀어버리는 일입니다. 행복만 계속되는 집안이 어디 있으며, 부귀만 계속 누리는 집안이 어디에 있는가요.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찾아오고, 불행하다보면 언젠가 행복할 때도 있는 것이지라고 마음을 먹을 때 근심은 풀린다고 여겼던 사람이 다산입니다. 고관대작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조금 어리석은 듯해야만 된다는데 그렇다면 재주꾼의 할 일이 없다는 데에 다산의 슬픔이 있습니다. 달이 차면 구름이 가리고, 꽃이 만개하면 바람이 또 그냥 두지를 않는다는 데서 자신의 비애를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조가 한창 치세를 이루던 세월, 다산은 얼마나 잘 나갔으며, 얼마나 양양한 미래가 눈앞에 있었던가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보면 쇠퇴하기 마련, 40세의 나이에 귀양살이가 시작되어, 비애와 슬픔을 맛보던 다산, 세상만사가 다 그렇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 그런 어렵고 괴로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새벽에 혼자 앉아서」, 「홀로 앉아서」, 「걱정에 휩싸여서」 등등의 수많은 시는 대체로 그런 다산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비애와 절망에 좌절하지 않고, 그런 늪에서 이겨낸 다산이었기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금년에야 더욱 명성이 높아지는가 싶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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