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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빗나간 사랑 [송재소]

문근영 2012. 8. 12. 10:10

제 601 호
빗나간 사랑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 세상에 ‘사랑’만큼 아름답고 숭고한 말이 또 있을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에도 사랑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출신 학교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은 어느 누구도 그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사랑은 이렇게 절대적인 선(善)이지만 때로는 빗나갈 때도 있다.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은 빗나간 사랑이고, 자기 나라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배타적인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빠진 사랑도 빗나간 나라 사랑이다. 자식을 너무도 사랑해서 캥거루처럼 늘 품에 품고 다니는 엄마나, 자식의 주위를 맴돌면서 자식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지시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맘’의 사랑도 빗나간 자식 사랑이다. 이 빗나간 사랑의 결과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빗나간 남녀 간의 사랑은 당사자를 파멸로 이끌고 배타적인 국수주의는 조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없으며 헬리콥터 맘의 사랑은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게 된다.

현판, ‘光化門’이냐 ‘광화문’이냐

내가 이렇게 사랑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광화문 편액의 글씨를 두고 벌어지는 최근의 논란 때문이다. 편액의 글자를 ‘光化門’으로 해야 할 것인가 ‘광화문’으로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양측 주장이 지금 팽팽히 맞서고 있다. ‘光化門’을 주장하는 한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진태하 이사장의 논리는 “광화문은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복원이므로 현판도 당연히 원래대로 한자로 써야한다”는 것이고, 이에 맞서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는 “光化門은 역사 속에 있는 죽은 현판이다. (한글) 광화문은 오늘날 살아있는 현판이고 우리의 상징이고 자랑”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뗀 일은 역사 파괴다. 한글현판은 민주정치의 상징이다”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열렸던 공청회는 막말까지 오간 끝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지만 결국은 한글전용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의 재연이다.

이대로 대표가 한글 편액을 주장하는 것은 한글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과학적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된 한글은 우리 민족문화의 금자탑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복원된 고궁의 편액을 한글로 바꾸는 것이 과연 참된 한글 사랑일까? 그렇게 함으로써 한글이 얼마나 발전하겠는가?

문화유산은 원형 그대로, 한글 발전은 그것대로

정말로 한글을 사랑한다면,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외계어(外界語) 같은 인터넷 언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가세한 맞춤법을 무시한 막말부터 바로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가카 새끼’와 같은 말이 아름다운 한글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가! 또한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도 한글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다. 보라, 거리의 간판 절반 이상이 영어로 되어있다. 이런 문제들을 제쳐두고 기껏 원래 한자로 쓰여 있던 고궁의 편액을 굳이 한글로 바꾸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한 주장인 듯하다. 역사적인 문화유산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그 바탕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자세가 옳지 않은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고함지르고 방자하게 굴어 주위의 빈축을 사는데도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들의 빗나간 자식 사랑은 결국 자식의 장래를 망친다. 무조건 한글이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한글 사랑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글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빗나간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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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재소
· 성균관대 명예교수
·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장
· 저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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