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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조를 후원한 인원왕후 [김문식]

문근영 2012. 7. 24. 07:48

제 274 호
영조를 후원한 인원왕후
김 문 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인원왕후 김씨는 숙종의 둘째 계비이다. 인원왕후는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를 뒤이어 숙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되었다. 그녀의 나이는 16세였다. 이후 인원왕후는 19년 동안 숙종과 함께 살았지만 소생이 없었고, 경종과 영조가 그녀의 아들이 되어 국왕으로 즉위했다.

인원왕후는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거나 국왕이 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21년(경종 1) 8월에 경종은 유일한 아우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후사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숙종은 말년에 연잉군을 경종의 후계자로 결정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35세의 국왕이 즉위한 지 1년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29세의 아우를 왕세제로 책봉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 일을 성사시킨 민진원조차 원래는 3년이 지난 뒤에 왕세제 책봉을 건의할 생각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숙종의 둘째 계비 인원왕후 김씨를 아시나요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할 때 인원왕후는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언관으로 있던 이정소가 후사를 세울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경종은 이 문제를 대신들에게 의논하라고 했다. 그러자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같은 대신들은 경종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이 일을 확정하려면 왕실의 어른인 인원왕후의 친필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종은 인원왕후를 만나 후계자 문제를 의논했고, 인원왕후는 ‘효종과 숙종의 혈속으로는 경종과 연잉군이 있을 뿐이니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 나의 이런 뜻을 대신에게 알려라.’라고 쓴 언문 교서를 작성했다. 이에 경종은 자신의 친필로 ‘연잉군’이라 쓴 종이와 인원왕후의 언문 교서를 신하들에게 내 주었다. 왕세제 책봉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인원왕후의 활약은 1721년 연말에 다시 나타났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환관 박상검이 왕세제가 경종을 만나러 갈 때 사용하는 청휘문을 폐쇄했다. 대궐 안에 여우가 있다고 하면서 문 안에 덫을 놓고 폐쇄해버린 것이다. 당시 왕세제는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고, 대리청정을 강하게 반대하던 김일경이 경종과 왕세제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사용한 계책이었다. 왕세제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이 사실을 인원왕후와 경종에게 알렸다. 그러나 경종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처음에는 사건의 책임자를 잡아오라 했다가 이내 명령을 거두어 버렸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다시 인원왕후가 나섰다. 그녀는 왕세제를 결정한 것은 선왕 숙종의 유언을 받았고, 경종이 직접 작호를 썼으며, 자신이 언문 교서를 써서 대신에게 명령하여 결정한 것이라 했다. 따라서 경종과 왕세제 사이를 이간시키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며 처벌 대상자의 이름을 직접 써 주기까지 했다. 이 사건은 청휘문을 폐쇄했던 두 환관과 인원왕후가 지명한 두 궁녀를 처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인원왕후로 인해 영조는 위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인원왕후는 영원한 영조의 후원자

1724년 경종이 사망하자 왕세제 영조는 국왕으로 즉위했다. 왕실의 관례상 새 국왕의 즉위식은 성복(成服)을 하는 날 거행되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영조가 즉위식을 거부했고, 영의정 이광좌는 인원왕후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인원왕후는 영조에게 왕위를 계승하라는 언문 교서를 내렸고, 교서를 읽은 영조는 즉위식을 수락했다. 영조가 국왕이 된 이후에는 청 황제의 공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번에도 인원왕후가 나섰다. 그녀는 청 황제에게 외교문서를 보냈다. 경종이 병을 얻어 사망했음을 알리고, 경종의 유언에 따라 왕세제에게 국사를 담당하게 했으므로 그를 국왕으로 책봉하고, 왕세제의 부인을 왕비로 책봉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영조를 국왕으로 책봉하는 청 사신이 서울에 도착했다.

영조는 인원왕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국왕이 되었다. 영조가 이러한 인원왕후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음을 당연한 일이다. 인원왕후는 16세에 숙종과 결혼하여 35세에 왕실 최고의 어른이 되었고, 영조의 후원자가 되어 노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모자 사이인 인원왕후와 영조의 나이는 불과 일곱 살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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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 조선후기 지식인의 세계인식』, 새문사, 200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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