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74 호 |
| 울타리 나라에서 벗어나려면 |
|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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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에 있는 화양구곡(華陽九曲)은 계곡 물이 맑고 바위가 우람하여 산수의 정기가 서려 있는 명승지이다. 또한 그곳은 17세기 조선유학의 거장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만년에 냇가 바위 위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이곳에서 강학(講學)한 유서 깊은 곳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있으면 이름이 나고,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있으면 신령스럽다”고 했는데, 과연 화양구곡은 자연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갔던 도학자의 발자취와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기에 더욱 빛난다.
암서재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우뚝한 석벽 곳곳에 새겨져 있는 큰 글씨들에는 송시열이 주창하던 의리정신이 응결되어 있다. 그 의리는 멸망한 명(明)나라를 정통으로 받들고 당시 중국을 지배하는 청(淸)나라를 오랑캐로 배척한다는 ‘숭명배청’(崇明排淸)의 4글자로 집약해볼 수 있다. 그래서 명나라 최후의 숭정(崇禎)황제 어필(御筆)로 “예법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례부동’(非禮不動) 4글자를 암벽에 깊이 새겨 넣었고, 송시열의 글씨로 “명나라가 천지의 주인이요, 숭정황제가 해와 달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다”는 뜻의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의 8글자도 암벽에 높이 새겨 넣었다. 역사적으로는 명나라도 중국이요 청나라도 중국이지만, 조선의 도학자들은 명나라가 우리를 보호한 상국(上國)이요 청나라는 우리를 침략한 오랑캐라는 의리를 밝혔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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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끄러운 역사····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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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16세기말에 임진왜란으로 일본이 전국토를 유린하였을 때 선조(宣祖)는 국경의 의주(義州)에 피난 가서 국가의 명맥이 경각(頃刻)에 달렸을 때, 명나라의 원군(援軍)이 국토를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선조임금은 명나라 원군의 총독(總督) 형개(邢玠)를 위해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生祠堂)을 세우고, “무너진 울타리 나라를 다시 세워주었다”는 뜻의 ‘재조번방’(再造藩邦) 4글자를 어필로 써서 그 사당에 걸게 하였다. 조선시대는 중국을 하늘로 삼고 우리는 그 울타리에 깃들인 나라로 생각하며, 중국을 받드는 사대(事大)를 의리로 삼아 왔다. 그 사대주의가 큰 나라의 압력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논리였는지, 골수에 파고든 예속의 의식인지는 다시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시대가 바뀌어 오늘에 와서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보호를 받는 형편에 놓여있다. 민족이 분단되고 북한의 남침을 받아 우리정부가 이번에는 국토의 남쪽 끝인 부산에 피난을 가서 명맥이 위태로웠을 때, 미국 군대의 도움으로 겨우 다시 회복할 수 있었으니, 조선시대 도학자의 논리로는 또 한 번 ‘재조번방’의 은혜를 가슴에 새겨야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것도 역사의 반복이란 것인지…
최근에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브레진스키가 새로 출간한 책의 내용이 신문지면에 소개된 일이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의 국력이 약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한국은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거나,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에 의존하거나, 일본과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중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축소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우리가 핵보유국이 되어 독자노선을 가지 않는다면 또다시 중국에 의지하는 ‘울타리 나라’로 안주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섬칫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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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힘은 땅덩이가 아니라 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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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작으니 큰 나라의 압력을 완화시키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사대’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맹자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천명을 즐거워하는 것이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천명을 두려워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작은 나라로서는 ‘사대’(事大)함으로써 그 나라를 보존할 수 있지만, 큰 나라로서도 ‘사소’(事小)함으로써 천하의 평안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작은 나라만 ‘사대’하고 큰 나라는 ‘사소’하지 않는 것일까? 이른바 강대국은 무력의 힘으로 약한 이웃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스스로 힘을 소진하여 쇠퇴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또한 작은 나라는 왜 큰 나라에 의지하여 울타리노릇을 하는데 안주하고 있는 것일까? 약소국들이 끊임없이 내분을 일으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자립의지를 잃고 말았으니 이것도 역사의 현실이다.
힘의 논리만 중시하는 미국 학자야 핵을 보유한 나라만이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우리는 작은 나라지만 전자·조선 등 세계의 일류기업도 일구어낸 저력을 지니고 있으니, 안으로 결속하여 경제성장과 정의롭고 품격 있는 사회를 이루어 내며, 그래서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만 있다면 핵보유국이 되지 않더라도 어떤 강대국도 넘볼 수 없는 강소국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무모하게 울타리를 뛰쳐나오는 것이 자립의 길은 아니다. 울타리에 안주하면서 안으로 끝없이 당쟁으로 분열만 일삼다가 나라가 무너진 다음에야 애국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어리석음을 오늘 우리가 또다시 되풀이 하지는 말아야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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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금장태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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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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