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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타인의 삶, 누군가 훔쳐본다는 것 [유지나]

문근영 2012. 7. 16. 07:08

제 597 호
타인의 삶, 누군가 훔쳐본다는 것
유 지 나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만일 누군가 당신을 지켜본다면, 전화와 대화도 도청된다면... 이런 가정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 터져 나온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이 그렇다. 고위 공직자가 부하 공무원에게 누군가 몰래 지켜보라고 지시한 끔찍한 일이 증거와 함께 연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과거 독재 권력이 적대 세력을 압박하고 멸망시키는 장치로 사용해 온 역사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작태가 민주화가 진행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황당하고 절망적이다. 그런 업무가 부당하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깨달은 이가 불법사찰 지시 녹음자료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해준 것이 다행이다. 과거 얼버무리고 넘어간 이 엄청난 사건을 특별수사부가 다시 조사하고 있다. 사법부 개혁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깃털만 뽑지 말고 몸통을 밝혀내 처벌하는 공명정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법치국가의 위상이 설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 불감증, 도를 넘어

그런 변화는 훔쳐보기와 도청이 등장하는 영화들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독일영화 <타인의 삶>(2006)은 특히 그렇다. 배경은 통일 5년 전, 비즐러는 동독의 보안국 슈타지 요원이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잘 나가는 연극 작가 드라이먼을 밀착 도청하는 것이다. 체제 충성적인 드라마를 쓰는 드라이먼은 고위층과 친분도 있다. 그런데 예술가 특유의 비판의식도 없이 완벽한 체제 충성적인 점이 오히려 의심을 사게 만든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른 이유도 있다. 문화부장관이 그와 사는 여배우를 탐내서 작가를 파멸시키려는 권력남의 사적 욕망이 가담했기 때문이다. 이제 비즐러의 일상은 작가 집 앞에 비밀의 방을 얻어 종일 그를 감시하고 도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상한 변화가 발생한다. 작가의 사생활이 비즐러의 눈과 귀를 통해 드러난다. 다가가 보니 그는 체제 비판으로 활동이 정지된 스승의 자살, 검열 당한 친구들 문제로 고뇌하는 예술가이다. 그와 여배우의 사랑과 갈등도 절절하게 중계된다. 경직된 비밀경찰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 예술가들의 고뇌와 우정은 그를 변화시킨다. 익명으로 서독 시사지 <슈피겔>에 동독 현실을 비판한 글을 쓴 작가를 보호하고픈 욕망마저 비즐러에게 생겨난다. 그래서 비즐러는 작가를 구하기 위해 타이프라이터까지 감추는 위험천만한 일도 감행한다. 작가의 수호천사가 된 것이다.

결국 도청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는 심증 속에 비즐러는 집배원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난다. 그러다 통일이 된다. 독재 권력의 비리와 반인권적 범죄는 법정에서 처벌받는다. 그러나 도청명령을 거부했기에 비즐러는 집배원으로 살아남는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작가 역시 비즐러 덕에 살아남아 감동적인 회고록을 쓴다. 이렇듯 이 작품은 통일 전후 독일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양심문제와 긍정적 변화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부정의한 명령체계를 탈주하는 비즐러를 맡은 올리히 뮈헤의 연기력은 혀를 차게 만든다. 비밀요원 자체를 보여주는 무표정한 냉혈한의 차가운 표정 속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내면의 결은 기막히다. 그런 공감대와 감동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과 더불어 수많은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연기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아주 드물게 독일영화를 수입하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이 지경에 이른 권력의 치부, 소도 웃을 일

특히 영화라는 매체는 카메라를 통한 훔쳐보기 메커니즘이 관음증(voyerism)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욕망에 접속한다. 굳이 야한 장르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누군가를 도청하고 훔쳐보는 욕망이 권력욕과 결합하면 포르노적 권력욕망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키에슬롭스키의 명작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도 그런 점을 보여준다. 앞집 여성을 훔쳐보던 소년은 포르노적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욕망을 던져버린다. 그러면서 그 여성과 인간적 연민을 나누는 변화를 겪는다.

정면으로 떳떳하게 대하지 못하는 관계는 늘 멸망을 자초한다. 훔쳐보기를 하는 몰카(몰래 카메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반인권적 작태이다. 그래서 화장실 몰카는 처벌받는다. TV의 몰카형식 프로그램이 허용되는 것은 그 이유와 결과를 내놓고 밝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만, 영화는 현실이란 재료로 만들어진다. 어떤 현실 사건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적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공적 현실은 사생활도 침범하는 변태적 몰카 드라마처럼 보일 정도다. 다시 수사 중인 민간인 사찰은 권력이 가담했기에 화장실 몰카 훔쳐보기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범죄 행위이다. 이제 모두 훔쳐보기가 아닌 상태로 떳떳하게 그 해결책을 지켜보고 있다.

팁: <타인의 삶>은 2007년 한국에서 개봉됐지만 예술영화라는 편견에 묻혀서인지 소수 극장에만 걸려 많은 이들이 볼 기회를 누리지 못한 명작이다. DVD를 통해서라도 꼭 음미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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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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