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산 호성봉에서 내려오는 破碎虎(파쇄호랑이)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 단청작업중

심검당 종무소는 중층, 하층은 공양간

반야사 조왕대신

반야사 대웅전

대웅전 석조석가삼존불: 본존 석가여래좌상, 좌협시 문수보살상, 우협시 보현보살로서 경주옥돌로 조성된 삼존불로 傳

좌협시 문수보살좌상

본존 서가모니불좌상

우협시 보현보살좌상

벽계당 정심대선사 진영

극락전

백일홍: 극락전 앞 배롱나무 2구루는 수령이 약 500년이 되었으며, 이 나무는 조선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 둔 것이 둘로 쪼개져서 쌍배롱나무로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장전

백화정사

관음보살 연지

산신각


부도2구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 1374~1446)이 반야사와 관련된 2수의 시비
반야사에 와서 묵은지 오랜데 집 생각이 전연 안나는구나
산 빛은 자리에 비춰 푸르고 대나무 그림자는 발에 들어와 성글다
맑은 시냇물은 깊은 골짜기에 소리 내며 흐르고 흰 구름은 파란 하늘 위를 떠간다
스님은 하던 공부를 이미 끝냈는데 책상위에는 읽던 책이 그대로 남아있구나.
반야사에 와서 묵으며 대 숲속 높은 절간 사람소리 적구나
밤중에 시냇물소리는 꿈속에 맑다 촛불은 가물가물 향은 꺼져가는데
스님은 벽을 향해 앉았구나 밭에는 산들바람 불어오고 달은 밝게 비친다.

세조대왕이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이 맑은 물에서 목욕을하였다고 전해오는 영천.

반야사 소방차

반야호
백화산 반야사 (白華山 般若寺)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1-1 043-742-4199 7722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이신 상원대덕이 창건하였다.
백화산(白華山)이란 이름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산’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반야사의 아름다운 풍광은 거대한 백화산과 더불어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 석천과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사찰을 지나 석천을 따라 올라가면 반야사의 설화와 관련된 영천이라 불리는 곳이 나타난다.
이 영천의 오른편으로는 절벽을 따라 계단을 한참을 오르면 망경대라 불리는 곳에 문수전이 자리하고있다.
한편 요사 뒷 산에는 수만년동안 흘러내린 파쇄석이 산 허리에 쌓여 자연스럽게 호랑이 형상을 이루어
그 높이가 80여m요, 길이는 약 300여m로 파쇄석호상破碎石虎像)이 문수도량의 산신으로 화현하고있다.
경내의 현존 유물과 전각으로는 삼층석탑, 대웅전, 지장전, 극락전, 문수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
적묵당, 심검당(종무소.공양간), 백화정사 관음연지 등이 있다.

영천(靈川)과 망경대(望景臺)의 문수전(文殊殿)

영천에서 망경대 문수전을 오르내리는 가파른 계단

망경대 문수전 卍자 울타리

문수보살상과 소형 문수원불의 형상이 특이하고도 영묘하다.

문수전 맞배지붕

문수전 문수보살과 세조대왕 벽화 ↕


문수전 망경대에서 내려다본 영천과 반석

문수전 망경대에서 내려다본, 호성봉에서 내려오는 파쇄호랑이(破碎虎像)
망경대 문수전과 영천 충북 영동 황간 백화산 반야사
반야사에서 약 200미터 동쪽으로 올라가면 계류면에 수십평 넓이의 반석이 깔려 있고
4면이 준봉으로 둘러쌓여 녹수청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이 망경대.
이 영천은 조선 7대왕인 세조대왕이 문수보살의 안내로 목욕을 한 후 병이 낳은 곳이다.
문수동자(文殊童子)와 세조대왕의 설화
망경대(望景臺)란 이름은 옛날 문수동자가 용소(龍沼)라고 하는 곳에서 목욕을 하고,
이절벽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아침 해돋이를 배례하였다하여 붙여진이라고 한다.
이곳 망경대에는 세조대왕이 다녀간 역사가 있다.
조선 세조 10년 2월에 세조는 어가(御駕)를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옮겼다.
전하(殿下)는 법주사와 복천사 중간에 있는 정결한 나무숲 계곡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예조(禮曺)에 분부하여 복천사 산신각에 치성공양을 드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 殿下는 극락전에 들었다.
전하는 이날부터 3일간 삼보에 공양하고 3일간에 걸쳐 법장을 개설하고 법회를 열게 하였다.
세조는 본래 믿음이 두터워 평소에 유명한 고승 대덕들인 신미(信眉),수미(守眉),학조(學祖),스님
등과도 가까이 지낸 것으로 조선불교사(金煥泰 著)는 기술하고 있다.
전하는 법회를 마치고 산속을 두루 돌아다닌 후 황간(黃澗)의 백화산 반야사로 갈것을 분부하였다.
이는 신미(信眉)스님의 상주(上奏)에 따른 것이다.
신미(信眉)스님 등은 2년전인 세조 9년 4월에 백화산 반야사를 중창할 것을 상주하여
윤허를 얻어서 중창불사를 끝낸 다음이었다.
그리하여 면모가 일신되고 가람의 규모가 웅장해진 반야사를 왕 자신도 한번 보고 싶어서
신미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이 절로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이다.
반야사가 자리잡고 있는 백화산 기슭의 좁은 골짝 마을은 대왕의 어가를 맞아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다.
위로는 종훈(宗勳)에서부터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의 백료(百僚)들이 호종(扈從)을 하니
충청감사, 경상감사와 본군(本郡)인 황간현감은 말 할나위도 없고 영동, 상주, 청산, 보은 등
인접한 수령들이 모두 반야사로 모여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천지개벽 이래로 이 골짝에는 처음 있는 법석이었다.
전하는 가람의 중창된 모습을 두루 살피시고는 신미스님등에게 위로하는 분부를 내리었다.
신미스님 등도 기뻐서 어전에 부복하여
“이 모두가 전하의 높으신 불심(佛心)에서 연유한 것이오니 성은(聖恩)이 망극하오이다”
이렇게 아뢰었다. 전하는 만족하였다.
대웅전에 다녀서 물러나온 전하는 이 절에서도 법회를 열도록 분부 하였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이적(異蹟)이 일게 되었다.
사자 등에 올라선 어린 문수보살이 어전에 나타나서 나를 따르시오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전하는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신령스러운 기운에 압도되어 시키는 대로 문수보살 뒤를 따라 나섰다.
문수보살을 따라 망경대를 향해서 계곡을 거슬러 동쪽 계곡을 더듬어 올라
급기야 반석천인 영천(靈泉)에 이르렀다.
전하는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그 영천의 물을 떠서 마신다음
그 밑에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목욕을 하였다.
“상감 마마의 불심이 갸륵하시기에 그 공덕으로 말미암은 부처님의 은총이나이다.”
이렇게 외이고는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사라져 버리었다.
목욕을 하고 물밖에 나서니 영천위에는 연꽃이 만발하였다.
전하는 황홀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었다.
절로 돌아온 전하는 분부를 내리어 지필묵(紙筆墨)을 대령케 하였다.
전하는 붓을 들고 단정히 꿇어 앉아 종이에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것을 반야사에 하사하였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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