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사에서 200여m 위에 있는 반석 영천(靈川)으로 세조대왕이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이 영천의 물을 떠서 마신다음 그 밑에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목욕을 하였다고 전한다

영천(靈川)과 망경대(望景臺)의 문수전(文殊殿)

영천에서 망경대 문수전을 오르내리는 가파른 계단

망경대 문수전 卍자 울타리


문수보살상과 소형 문수원불의 형상이 특이하고도 영묘하다.

문수전 외벽화.. 세조대왕이 어의를 입고 문수보살을 바라보는 모습


문수전 맞배지붕

문수전 망경대에서 내려다본 영천의 상류천

문수전 망경대에서 내려다본 영천과 반석

문수전 망경대에서 내려다본, 호성봉에서 내려오는 파쇄호랑이(破碎虎像)
망경대 문수전과 영천 충북 영동 황간 백화산 반야사
반야사에서 약 200미터 동쪽으로 올라가면 계류면에 수십평 넓이의 반석이 깔려 있고
4면이 준봉으로 둘러쌓여 녹수청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이 망경대.
이 영천은 조선 7대왕인 세조대왕이 문수보살의 안내로 목욕을 한 후 병이 낳은 곳이다.
문수동자(文殊童子)와 세조대왕의 설화
망경대(望景臺)란 이름은 옛날 문수동자가 용소(龍沼)라고 하는 곳에서 목욕을 하고,
이절벽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아침 해돋이를 배례하였다하여 붙여진이라고 한다.
이곳 망경대에는 세조대왕이 다녀간 역사가 있다.
조선 세조 10년 2월에 세조는 어가(御駕)를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옮겼다.
전하(殿下)는 법주사와 복천사 중간에 있는 정결한 나무숲 계곡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예조(禮曺)에 분부하여 복천사 산신각에 치성공양을 드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 殿下는 극락전에 들었다.
전하는 이날부터 3일간 삼보에 공양하고 3일간에 걸쳐 법장을 개설하고 법회를 열게 하였다.
세조는 본래 믿음이 두터워 평소에 유명한 고승 대덕들인 신미(信眉),수미(守眉),학조(學祖),스님 등과도
가까이 지낸 것으로 조선불교사(金煥泰 著)는 기술하고 있다.
전하는 법회를 마치고 산속을 두루 돌아다닌 후 황간(黃澗)의 백화산 반야사로 갈것을 분부하였다.
이는 신미(信眉)스님의 상주(上奏)에 따른 것이다.
신미(信眉)스님 등은 2년전인 세조 9년 4월에 백화산 반야사를 중창할 것을 상주하여
윤허를 얻어서 중창불사를 끝낸 다음이었다.
그리하여 면모가 일신되고 가람의 규모가 웅장해진 반야사를 왕 자신도 한번 보고 싶어서
신미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이 절로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이다.
반야사가 자리잡고 있는 백화산 기슭의 좁은 골짝 마을은 대왕의 어가를 맞아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다.
위로는 종훈(宗勳)에서부터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의 백료(百僚)들이 호종(扈從)을 하니
충청감사, 경상감사와 본군(本郡)인 황간현감은 말 할나위도 없고 영동, 상주, 청산, 보은 등
인접한 수령들이 모두 반야사로 모여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천지개벽 이래로 이 골짝에는 처음 있는 법석이었다.
전하는 가람의 중창된 모습을 두루 살피시고는 신미스님등에게 위로하는 분부를 내리었다.
신미스님 등도 기뻐서 어전에 부복하여
“이 모두가 전하의 높으신 불심(佛心)에서 연유한 것이오니 성은(聖恩)이 망극하오이다”
이렇게 아뢰었다. 전하는 만족하였다.
대웅전에 다녀서 물러나온 전하는 이 절에서도 법회를 열도록 분부 하였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이적(異蹟)이 일게 되었다.
사자 등에 올라선 어린 문수보살이 어전에 나타나서 나를 따르시오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전하는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신령스러운 기운에 압도되어 시키는 대로 문수보살 뒤를 따라 나섰다.
문수보살을 따라 망경대를 향해서 계곡을 거슬러 동쪽 계곡을 더듬어 올라
급기야 반석천인 영천(靈泉)에 이르렀다.
전하는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그 영천의 물을 떠서 마신다음
그 밑에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목욕을 하였다.
“상감 마마의 불심이 갸륵하시기에 그 공덕으로 말미암은 부처님의 은총이나이다.”
이렇게 외이고는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사라져 버리었다.
목욕을 하고 물밖에 나서니 영천위에는 연꽃이 만발하였다.
전하는 황홀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었다.
절로 돌아온 전하는 분부를 내리어 지필묵(紙筆墨)을 대령케 하였다.
전하는 붓을 들고 단정히 꿇어 앉아 종이에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것을 반야사에 하사하였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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