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종남산 송광사

문근영 2012. 6. 9. 08:52

 종남산 송광사   대웅전에 봉안된 왕실목조원패    (왕비전하수제년) 인조연간에 조성봉안

 

 

 終南山 송광사  금강문

 

 보물 제 1255호 종남산 송광사 ▲ 동방지국천왕상                       ▲ 남방 증장천왕상

 

                ▲ 서방 광목천왕상                                               ▲  북방 다문천왕상

 

 

  종남산 송광사  범종루   보물 제 1244호                   국내유일의 십자형 범종루

 

  종남산 송광사  대웅전  보물 제 1234호

 

 송광사 대웅전 소조삼신불  보물 제 1274호 (아미타여래좌상 + 석가여래좌상 + 약사여래좌상)

 

 종남산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좌상             (소조삼신불은 인조 19년인 1641년에 조성 봉안)

 

 종남산 송광사  대웅전       우협시  소조 아미타여래좌상   ( 하품중생인)

 

 종남산 송광사   좌협시  소조약사여래좌상

 

  종남산 송광사 대웅전    임금원패     주상전하수만세  인조연 간에 조성봉안 (1623~1649)

 

   왕비전하수제년                                                    왕비의 천수를 축원하는 대형목패

 

  세자저하수천추    (청나라에 볼모로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 무사귀환을 염원 ? .... )

 

  종남산 대웅전 천장에 나툰  목조 천인상  ▲     ▼    

 

 종남산 송광사 대웅전  판벽화     천인들이 환희에 넘쳐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종남산 송광사   정료대 ?                       석수                                     벽사를 상징 ?

 

  종남산 송광사  나한전

 

    종남산 송광사  천인,천녀상.                   머리장식과 복식이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을  ▼

 

  종남산 송광사  지장전▲                                                                           석조  ▼

 

 

전북 완주 종남산 송광사.

조계종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7년 (867년)에 구산선문의 개산조인 보조체징선사가 개창 ?. 

조계산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창을 발원하신 후  현재의 도량 전각들은 1600년대

보조 지눌국사의 법손들이 불사를.

 

병자호란으로 두 왕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인조대왕이 두 왕세자의 무사환국과 국란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써 치유 하고자 대대적으로 중창한 인조대왕의 호국 원찰이다.

당시 무주 안국사 주지인 벽암대사를 개창조로, 국가의 절대적 신임과 수행, 학덕을 갖춘

벽암당 각성대사를 화주로 파견하여 인조 14년 (1636) 에 대중창 완공 하였다. .

또한 병자호란시 전주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본사에 승군 700명을 배치 하였던 곳으로서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했던 호국도량이기도 하다.

 

또한 진묵스님께서 1623년(계해년) 대웅전 삼존불 조성시 증명법사로 초청되었으나
부여 무량사에서도 동시 초청된 관계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무량사에는 단주를 보낸후

법력을 나투시었는데 주장자가 밤낮으로 꼿꼿이 서서 법상을 돌리는 이적을 나투신 곳이기도! .

초의선사의 문헌에 진묵대사의 이적에 관한 기록. 송광사 개창비에 (大禪師 震○堂) 이라고...

벽암당 각성대사도 본사 주지를 역임 하시고  현종1년 (1660)에 이곳에서 입적 하셨다.


★보물 
    제1243호 대웅전   96. 05. 29 1동(36평) 
    제1244호 종루     96. 05. 29 1동(30평) 
    제1255호 사천왕상 97. 06. 12 4구 
    제1274호 소조삼불좌상 97. 08. 08 3구

★문화재자료 제144호 벽암당 부도

★송광사 사적비 전북 제 5호 (전주부송광사개창지비)
   이 비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14년(1636)에 송광사 개창(開創)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높이 2.4m, 폭 94cm이다.
 

   비문은 신익성(申翊聖1588~1644)이 撰 하고,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이 書.  

   제액(신익성 사호선종대가람사)
   전면에 비명과 고려의 보조국사가 전주의 종남산(終南山)을 지나다가 절터를 잡아 놓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 하였다는 내용과 보조국사로 부터 벽암대사(碧巖大師)에

   이르는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종남산인(終南山人) 명공(明公)의 말을 인용하여

   절을 짓게 된 경위 및 벽암의 제자와 시주한 사람, 그리고 개창 당시 기술자들의 이름을 기록.
 
◆신익성/申翊聖 (1588 선조21~1644 인조22).
  척화오신의 한 사람,  자:군석,  호:낙전당,동회거사.  본관:평산.  선조의 정숙옹주와 결혼, 

  영의정 신흠의 아들. 인조5년(1627) 정묘호란시 세자를 모시고 전주로 피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종 扈從.   斥和五臣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에 붙잡혀 갔다가

  귀국하여 詩 酒 로 세월을............   충의와 효성이 지극, 문장과 글씨에 능했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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