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성모암 진묵대성사 존비 무자손천년향화지지 (김제)

문근영 2012. 5. 31. 10:02

  무자손천년향화지지 성모암 입구

 

  선효문 2006년 현재

 

  성모암 전경 2008.4.

 

 

  진묵조사존비에서 우요삼잡

 

 2006년 현재

 

  진묵조사존비지묘비

 

  진묵조사 모친49제제문

 

  제문과 한반도 연당

 

  고시례전 석조여래좌상

 

  고시례전 임오년

 

  성모고씨영

 

  진묵성사영

 

   하층기단을 귀부로, 상층기단을 사사자로 조성한 오층 공양석탑

 

  상층기단의 중앙에 진묵대성사 모자상을 봉안하여 ....

 

  성모암 대웅전

 

  주련  진묵대사의 글
    道傳寂寞三更月(도전적막삼경월) : 도를 위한 마음은 삼경의 마음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愁送江山萬里風(수송강산만리풍) : 근심, 걱정, 번뇌의 마음은 만리 밖으로 날리어 보낸다.

 

    聖母宮殿香雲開(성모궁전향운개) : 성모궁전의 향내음은 구름따라 만리에 퍼지고
    靑雲衲子雲集來(청운납자운집래) : 맑고 청정한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행 정진하리라. 
  

  대웅전 벽화  어미니 고씨께서 냇가로 나가시다 복숭아를 하나 먹고난후 잉태하였다는 내용으 벽화...

 

  아비없이 낳은 아기를...   까치들의 보살핌으로 집으로 되돌아 오게된 아기를 상징...

 

  7세에 어머님 손을 잡고 입산하는...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및 천불

 

  산신각 초가지붕에서 와가로 ...

 

  구 산신탱

 

  산신의 손과 발톱이 엄청나게 길게...

 

  성모암 종무소

 

  성모암 공양간 입구에 봉안된 조왕탱

 

  승요

 

유양산 聖母庵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 토정마을 388번지. 
성모암의 창건 유래
이 묘소가 퇴락될 즈음 丁巳年 (1917년) 5월에 고(故) 이순덕화의 현몽에 의하여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를 알게 되었다 한다, 

부인이 영험의 놀라움에 기의(己疑)하여 묘소에 정성껏 시묘를 하는 동안 지방 유지 및

인근의 신도들이 진묵대사의 약력과 이순덕화 부인의 공덕 비문을 세우고 묘 아래 재각을 건립하고

삼존불을 위시하여 진묵대사 모자 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己巳年 (1989년) 성모암으로 중창,

당우로는 대웅전,고시례전,극락전, 종무소 요사 , 범종각 등의 전각이 있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 명종 17-인조 11년.10.28)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화포리란 곳은 옛날의 불거촌(佛居村)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대사의 이름은 일옥(一玉)이고 호는 진묵(震默)이다.

 

7세에 출가하여 완주 봉서사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 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효가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인

유양산에 묘를 정해 만인의 참배를 받도록 하였으며 72세인 1633년에 입적하였다

(제일 음 10월 28일).
 
◈초의(草衣)가 지은 <진묵조사유적고 震默祖師遺蹟攷>에는 18가지 이적(神異)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1.늙은 어머니를 왜막촌(倭幕村)에서 봉양하고 있을 때, 여름 날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쫓게 한 뒤로는 이 촌락에 영영 모기가 없어졌으며 어머니가 죽자 제문을 지어 위령 하였다.

 

  2.곡차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는 것이 계행(戒行)이었는데,
    어느 날 한 중이그것이 무엇이냐고 세 차례나  물었으나,중이 대사를 시험하기 위하여

    모두 술이라고 대답 하였으므로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 중을 타살 하였다.

 

  3.대사가 길을 가는데 소년들이 냇가에서 생선을 끓이고 있으므로 탄식하면서,

    이 무고한 고기들이 확탕의 고생을 하는구나 하니, 한 소년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스님도 먹고 싶지 않은가 ? "

   하였다. 나도 잘 먹는다. 하면서 그 고기를 몽땅 먹은 뒤 냇가에 가서 뒤를 보니 무수한 고기가 살아서 헤엄쳐 갔다.

 

  4.합천 해인사에 화재가 나자 입으로 물을 뿜어 껐다.


◈성모님무자손 천년 향화지지(無子孫 千年 香火之地) 『제일祭日 三월 초八日』
  진묵대사는 그가 출가하면 대를 이을 손이 끊기어,
  그의 어머니 묘에 성묘할 사람이 없을 것을 예견하여 풍수설에서
  말하는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 자손이 없어도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천년 동안 이어지는 명당)에 안장 하였다.
 
  이 무덤에 고사를 드리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된다고 하여 400 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잘 보존 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고시래의 유례
  진묵대사는 불거촌에 어머니의 묘소를 정하고 후손이 없으므로 지속적 관리를 위해 진언으로,
  제사 지내는 방편을 삼아 들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 "고시래"라 하여 제사를 대신 하였다 한다.
  고시래의 고시는 제주 고씨인 성모님의 고씨(高氏)에서, 래는 예도예(禮)를 써서 고시래라하여
  간편하게 신행할 수 있게 한 것에서 유례 된다고 전한다.
 
◈49제문
  
胎中十月之恩을何以報也 (태중시월지은 아이보야) 『

열달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요』

膝下三年之養을 未能忘矣(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

『슬하에서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가 없습니다』

 

萬歲上更加萬歲子之心猶爲嫌焉(만세상갱가만세자지심유위혐언)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 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부족한데』

百年內未萬百年母之壽가 何其短也(백년내미만백년모지수하기단야)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하시었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 짧습니까』

 

單瓢路上行乞一僧旣云已矣거(단표로상행걸일승기운이의)

『한 표주박을 들고 노상에서 걸식하는 이 중은 이미 말할것도 없거니와』

橫釵閨中未婚小妹寧不哀哉(횡채규중미혼소매령불애재)

『비녀를 꽂고 아직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上壇了下壇罷僧尋各房(상단료하단파승심각방)

『상단불공과 하단의 재가 끝나니 승려는 각기 방으로 찾아가고』

前山 疊後山 重魂歸何處(전산 첩 후산 중 혼귀하처)

『앞산 뒷산 첩첩산중인데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로 가시었습니까』

 

嗚呼哀哉로다(오호애재)

『아!   슬프기만 합니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