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87 호 |
| 1번 국도를 걷다 |
| 정 지 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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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나절 우리가 걸을 노정(路程)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의 이서초등학교에서 김제시 금구면 사무소까지 8.57km, 20여리 길이다. 임꺽정의 처남 황천왕동이처럼 걸음이 날랜 장정이라면 한식경(밥 한끼 먹을 시간, 약 30분)이면 족하고, 꺽정이와 함께 팔도 유람을 나선 갖바치 노스님의 걸음으로도 한 시진(2시간)이면 당도할 지척간이다. 우리 일행은 삼례서 내려온 오전반과 합류하여 중화(中火)부터 하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이 길이 동학 농민군이 기세 좋게 북진하다가 우금치에서 풍비박산이 되어 쫓겨 내려온 길인디, 기왕이면 눈발도 날리고 찬바람도 매섭게 불어야 제격이 아녀?” 꺽정이처럼 훤칠하게 생긴 이서농민회 친구가 어제부터 걷고 있는 경북 영천농민회 이중기 시인에게 소주잔을 건넨다. 그들은 어젯밤에도 구룡포 과메기를 안주로 꽤나 마셨던 모양이다. 그러면 이 길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던 길도 되겠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 첫 구절과 함께, 타는 듯 쏘아보는 사진 속 전봉준의 눈초리가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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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군이 못다 이룬 염원의 길, 그 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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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분노에 눈을 부릅뜨고 치달리는 농민군이 아니라 산천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쉬엄쉬엄 걷는 평화순례자들이다.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며 웃기도 하고,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은 이런 모양새가 바로 제주도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며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는’ 한국작가회의의 ‘글발글발 평화 릴레이’에는 제격이 아닐까.
“아따, 요즘 젊은 것들 시는 왜 그리 어렵다요?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먹지를 못하겠당께. 이시영 선배를 만난 자리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는 70%가 이해가 안된다고 했더니, 자기는 90%가 이해가 안된다지 뭐유. 그란디 얼마 전에 어떤 후배가 하는 말이 내 시가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된대유, 글씨.” 뒷전에서 들리는 여성들의 맛깔스런 전라도 사투리와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말벗이 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곽병창 교수에게 아는 이들의 안부를 묻다가, 예전에 전주의 한 소극장에서 겪은 김남주 시인의 연행사건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를 둘러싼 국가보안법 재판을 풍자한 연극「남자는 위, 여자는 아래」(안종관 작)의 공연 도중 갑자기 변압기가 터져 정전이 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즉흥적으로 객석에 있던 김남주 시인을 무대로 불러내 촛불을 켜놓고 국가보안법의 폭력성에 관한 경험담을 듣게 되었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 전기가 들어와 공연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기관원 두 명이 관객들의 거센 항의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바로 우리 눈앞에서 김남주 시인의 팔짱을 끼고 낚아채 가는 것이 아닌가. 관객들은 김 시인의 겁먹은 표정과 사색이 된 얼굴을 목격하면서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극단의 배우들이 꾸민 장난이었다.
“그게 아마 1991년 초가 아닌가요?” “아니, 90년 12월입니다. 당시 제가 극단 대표였고, 소극장 개관 기념공연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그 친구들 장난이 좀 지나쳤어요.” “마침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지요. 배우 한 명은 관객한테 심하게 얻어맞기도 했는데, 나중에 그 친구들 제가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주 공연이 있은지 4년 후에 작고한 김남주가 겉으로는 강철 같은 투사였지만 속은 여리고 어리숙한 시인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오랜 수배생활 끝에 「모란꽃」같은 명작을 남기고 아깝게 먼저 간 광주의 극작가 겸 연출가 박효선과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신 『녹두장군』의 송기숙 선생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금구면 사무소에 당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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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길모퉁이에 펄럭이는 플래카드 사연을 들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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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면(面)사무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사진을 찍은 다음, 바로 앞에 있는「면(麵)사무소」(실제 간판에 적힌 음식점 이름이다)로 들어가 막걸리와 칼국수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나는 자리를 마련해준 지방의회 의장님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오다보니 이곳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내지 말라는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붙어 있던데, 무슨 까닭입니까? 보통은 자기 고장으로 길을 내달라고 아우성인데요.” “요즘은 산을 뚫어 길을 높게 내는 통에 보기에도 흉하고, 소음은 물론이고 타이어 가루나 분진이 날려 몸에도 안 좋은데다, 고가도로 때문에 지역이 분단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가급적 지상으로 길을 내라고 요구하지요. 새만금-포항 고속도로 노선이 지나는 이 지역의 산악지대가 일제 강점기의 금광개발로 개미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옛날 도면을 구해서 보여줬더니 노선이 바뀌었어요. 의외로 싱겁게 문제가 해결된 셈이지요.”
숱한 길이 뚫려 사통팔달인 이곳 김제시는 오히려 돈이 빠져나가고 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이제는 주민들도 고속도로와 고가도로가 번영을 가져오기는커녕 만경들의 지평선을 어지럽히는 시각적 폭력임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이 아름다운 제주도의 생태환경과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 균형을 깨뜨리는 폭력임을 모두가 뼈저리게 느낄 날도 멀지 않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의 생각도 평화순례단의 달팽이걸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세상이치니까. 평화순례단은 오는 20일 강정마을에 도착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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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정지창 |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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