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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정치의 해’라고 해서는 아니지만 <역사소설 솔섬(松島)>이란 정치 풍자소설은 새해벽두에 호쾌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에도 선거철에는 으레 당선자를 암시하는 삼국지 같은 정치소설이 나왔지만 이 소설은 그런 류와는 차원이 다른 ‘한국 현대사를 진하게 비튼’ 유쾌한 배반의 기쁨을 주었다.
민족에게 큰 꿈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지도자의 혜안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꼼꼼한 일상까지 헤아려야 하는 입법자이어야 할 정치가 오늘처럼 조롱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는가 싶다.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면 정통소설가가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막소설의 칼을 뽑았을까. 가히 안정효의 대변신이다.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하얀 전쟁>, 한국전쟁의 참극을 다룬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그동안의 무겁고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를 벗어던지고 무제한의 상상력을 신명나게 쏟아내 <솔섬>이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아무래도 풍자문학의 백미는 40년 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일 것이다. 문학이란 형식의 이 장시(長詩)가 독재자에게는 어떤 민주화 선언문이나 데모 대열보다 훨씬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유신을 획책하며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하던 무렵 독재자에게 날린 직격탄에 우리 대학생들은 환호작약했다. 물론 김 시인은 수감으로 이어지는 처절하고 기나긴 고행(苦行)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판소리 가락에 붙여 이 시를 암송하기도 했고 혼자 부르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이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겨울공화국에 민주화의 봉화를 피워 올리는 일이며 또한 옥중의 김 시인에게 조금은 덜 죄송할 것 같았다. 제도언론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꼭 다물고 있었으니 그때의 매스미디어 수단이었던 등사판을 정보계 형사의 눈을 피해 밤을 새워 등사해 내는 수밖에 없었다. <오적>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는 그들의 눈을 피해 <오적> 인쇄뭉치를 가슴에 품고 전국을 뛰어다녔던 일이 눈에 선하다.
나라가 세계 무역 10대국의 반열에 오르고 국민소득이 그때보다 20배 가까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그때의 5적이었던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은 아직도 부정부패와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소설가 안정효의 <솔섬>에 더욱 간교하고 세련되게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