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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정마을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염무웅]

문근영 2012. 2. 4. 09:43

제 569 호
강정마을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염 무 웅 (영남대 명예교수)

지난 겨울 우리 곁을 떠난 리영희 선생의 첫 저서가 『전환시대의 논리』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이 출판된 1974년의 시점에서 리 선생은 자기 시대를 전환의 시대로 보고 그렇게 제목을 붙인 것이었다. 그 무렵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한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고, 핑퐁외교에서 시작된 미-중관계가 1972년 닉슨의 중국방문을 거치면서 양국 간의 국교수립으로 귀결되어가고 있었다. 중국을 아직 ‘중공’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야 했던 경직된 냉전 상황에서 리영희 선생의 저서는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선구적으로 꿰뚫고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보다 꼭 30년 먼저 출간된 것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다. 수십 년의 실천과 사색이 결합된 심오한 이론서를 이런 자리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예의에 벗어나지만, 그럼에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오던 서구 자본주의체제가 20세기 들어 왜 갑자기 세계대전과 대공황과 파시즘의 대두 같은 ‘거대한 변형’에 빠져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자 대안적 가능성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판 발문에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적한 대로 이 책은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로부터 산업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여러 사상과 이념, 사회적·경제적 정책들의 변화를 기술하고” 있는 바, 바로 전해에 시애틀의 격렬한 반(反)세계화 시위를 목격했던 스티글리츠에게는 “마치 폴라니가 오늘의 문제에 대해 직접 발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차 주었던 것이다.

세계사적 도도한 변화를 꿰뚫어 본 지식인이 그립다

리영희 선생이 분석했던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은 그 후 미국 헤게모니의 상대적인 쇠퇴와 맞물리면서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사적 변화를 가져왔다. 다름 아닌 거대국가 중국의 부상이다. 그런가 하면 칼 폴라니가 문제 삼았던 자본주의 근대체제의 위기는 소련식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하고 레이건식 자유시장주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이제 또 다른 출구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고비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의 주시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사안은 리영희 선생과 칼 폴라니가 통찰한 이러한 ‘전환’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우리 한반도에서 더욱 강도 높은 위험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주기적으로 변화해왔고, 그때마다 그 변화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중국 대륙에서 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이 흥하고 망하는 데 따라 한반도에서는 왕조 교체나 외세의 침략 또는 그에 준하는 소란이 있지 않았던가. 백여 년 전의 청일전쟁·러일전쟁만 하더라도 동아시아 패권의 변동을 둘러싼 주변강국들 간의 힘의 각축에 우리 땅과 인민이 무고하게 짓밟힌 것이었고, 오늘 우리가 겪는 분단의 고통도 근원을 캐고 보면 세계정세의 변화를 옳게 읽고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꿈꾸는 ‘대국굴기(大國崛起)’가 아직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불과할지 모른다. 막대한 재정·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적·군사적·기술적 우위가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날로 달라져가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고, 특히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중국이 한국 제1의 교역 상대로 떠오른 데서 드러나듯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어떻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금세기 안에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강국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경제의 힘이 경제 바깥의 다른 영역을 향해 뻗어나가리라는 것도 명확한 일이다. 따라서 이 미묘한 전환의 시대에 미국 한 나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절하게 균형과 자주성을 견지하는 것은 우리의 앞날을 위해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하겠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강정마을,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지금까지의 거시적 관점에서 이제 제주도 강정마을로 초점을 옮겨보자.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곳은 서귀포시에 붙은 조그만 포구이다. 수려한 구럼비 바위해안으로 인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곳이다. 그런데 그 강정마을이 벌써 5년째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당국과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의 싸움으로 갈등을 겪고 있으며, 마을회장 강동균씨는 지난 8월에 구속되었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주민들이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움에 나서는 것은 정당하며, 정든 땅이 접근불가의 군사기지로 변하는 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기지반대 운동에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제주도 각처에서 달려온 사람들과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많은 평화 운동가들이 동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어촌은 마치 2006년 5월에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도두리가 그러했듯이 온 세상의 주목을 받는 문제적인 장소가 되었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시도가 의미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한 마디로 그것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어떤 규모로 건설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노엄 촘스키 교수와 평화운동가 매트 호이가 발표한 공동호소문 - “이런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목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중국으로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다”라는 주장(인터넷 한겨레 2011.9.30)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장차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 미국의 일방적 패권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시점, 즉 중국이 자신의 국가적 역량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어느 시점에 양국 간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물론 그것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시나리오지만, 그러나 그런 최악의 경우조차 예상하여 우리의 전략적 안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마땅한 의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은 미래세대를 위한 일종의 안전보장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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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발행인
·민예총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 역임
·저서 :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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