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사명대사생가지(四溟大師生家址)

문근영 2012. 1. 8. 12:00

  분충서난문

 

  숙청사는 맑고 고상한 유상에 대해 엄숙하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

 

   사명대사유허비

 

  사명대사유적지 조성기념비

  충의문

 

  생가지옆 저수지

 

  송운대사구택

  솟을대문

 

 사랑채는 사명대사가 거처하시던 곳으로 대사의 호를 그대로 사명당을 당호로 사용하고 있다.

 

   송운대사구택 안채

 

 

  안채옆 장독대

 

  안채앞 사랑채

 사명대사생가지(四溟大師生家址)   시도기념물  제116호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400
조선 중기 고승 사명당(1544∼1610)이 태어난 곳이다.

유정 [惟政, 1544~1610]   四溟堂 사명당

성은 임(任). 자는 이환(離幻), 호는 송운(松雲)ㆍ사명. 승명은 유정(惟政). 본은 풍천(豊川).

형조판서에 추증된 이수성의 아들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릴적엔 조부 밑에서 공부를 하고,
1556년(명종11) 13세 때 황여헌에게 <맹자>를 배우다 황악산 직지사의 신묵을 찾아가 승려가 되었다.

 

조선 13대 명종(明宗) 16(1561)년 선과(禪科)에 장원 급제(及第), 서산(西山) 대사(大師)의 법을 이어받아 도를 닦음.
선조(宣祖) 25(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승병을 모집(募集), 서산(西山) 대사(大師)의 휘하(麾下)에서 활약(活躍)하다가
그의 뒤를 이어 승군 도청섭이 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음. 선조(宣祖) 37(1604)년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日本)에 건너가
강화 조약(條約)을 맺고 잡혀갔던 포로(捕虜) 3천 500명을 데리고 돌아와 가의대부의 벼슬을 받음. 초서(草書)를 잘 썼음.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 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세상을 떴다.
저서로 『사명당대사집』7권과 『분충서난록』1권 등이 있다.

 

사명당은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냈으며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동안 고라리 399번지와 400번지를 두고 어느 곳이 그의 생가터였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전문가들의 조사결과 399번지를 그의 생가터로 추정하고 있는데, 399번지 일대의 지표조사 결과

기와 파편과 생활용품의 파편 등을 발견하였고, 건축물과 담장이 있었던 흔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사명당의 어릴 때의 생활을 기록한 것을 참고하면 집 가까이에 연못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고라리 399번지로 추정하는데 그다지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명당이 이따금씩 고향으로 돌아올 때 쉬었다는 바위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그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고 그의 생을 음미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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