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선영] 어느 날의 문답

문근영 2011. 12. 29. 09:47

어느 날의 문답

 

 

 

이선영

 

 

 

옆자리의 선배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하듯

내게 말했다 아름다운 시를 쓰라고

하지만 나는 답했다 내 속이 아름답지 못한 까닭에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노라고

나의 위장은 잡다한 것으로 가득하고

나의 간장은 걸러 내기에 바쁘며

나의 대장은 내버릴 것들을 쌓아 놓고 있으니

속에선 뭉글뭉글 컴컴한 시구름이 괴어오른다

뱃속에서 꾸룩꾸룩 시어들이 곯아 움틀거린다

 

아름다운 것은 내게 시를 쓰라 하지 않는다

다만 오랜만의 대청소처럼 몸에서 시어들을 털어 낸다

아름다운 것은 말을 버리게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말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당신의 어려움을, 아픔을

치유해 주었다고 당신에게서 오래 회상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 『현대시학』 (2011. 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메모 :